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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백두산 -- 4. 윤동주 생가와 비암산풍경구

by sang-a 2024. 9. 25.

아침에 일어나서 커튼을 젖히니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호텔에서 조식 먹을 때 음식을 가져와 창밖을 보며 먹으니 좋습니다.

천지 보는 것이 목표였는데 서파.북파를 모두 보았고 오늘을 시내관광이니 비가와도 상관 없습니다.

 

★ 윤동주 생가

 중국 길림성 연변 조선족 자치구 용정시. 

우리에게 북간도라 불려지고 있는 이곳은 일송정. 해란강등 우리 민족 수난의 땅으로 일제에 항거한 

아픈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우리 민족이 너무나 사랑하는 "서시"의 주인공 동주를 만나러 갑니다.

 

민족시인 윤동주가 태어나 15세 때까지 유년시절을 보낸 집과 (물론 복원된 집입니다)

봉오동전투나 청산리전투등의 핵심인물을 키우고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을 낸 명동교회 자리.

교회자리는 현재 명동역사관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짧은 생을 살다 억울하게 떠나 그가 감성 풍부한 젊은 날 썼던 가슴 절절한 시들을 읽습니다.

먹먹해지는 가슴입니다. 비가와서 참 다행입니다.

 

안내석에 윤동주는 

이전에는 중국조선족 애국시인이었지만 지금은 중국조선족 유명시인으로 바뀌었습니다.

돌에 새겨진 시들을 읽으며 마음이 저려옵니다.

뜨락의 꽃들이 빗방울 머금고 있는 모습이 곱기만 한데~

참, 입구에 석류가 있었는데? 맨 앞 사진. 

"여러 민족은 중화민족대가정에서 석류알처럼 굳게 뭉칩시다" 라는 표어라고 합니다.

★비암산풍경구

 전동카를 타고 바람부는 산길을 한참 달리니 비암산 꼭대기에 노래 선구자의 배경이된 일송정이 보입니다.

이곳에 모여 비밀회의를 했다고 합니다.

숲이 우겨져 들킬 우려가 적었기 때문으로 맑은 날이면 저 아래로 해란강과 들녘이 보이는데 

비가 오니 볼 수 없습니다.

 

정자가 있는 곳이 본래 소나무 자리였지만 계속 죽어 정자를 만들고 대신 옆쪽으로 소나무를 심었습니다.

일제가 한국인의 기상이 담겨있다는 말이 거슬려 소나무 밑에 약을 묻어 고사시켰다고 합니다.

 

구월 초입에 다녀온 이번 여행은 천지를 본 것도 좋았지만 역사적으로 의미가 큰 이런 곳까지

볼 수 있어 더 좋았습니다.

하지만 윤동주 생가라든지 일송정 이런 곳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나 찾지 중국인들은 찾지 않는 곳입니다.

 

공산국가에서 그들과 공존하며 살아가는 이곳 조선족들.

지식인들은 북경이나 상해로 가고 큰 돈 벌러 미국.한국으로 온가족이 떠나니 인구수가 늘기 힘든 상황이라더군요.

 

22년 조선 언어문자 공작 조례실시 세칙을 공표한 후 중국어를 우선적으로 표기하게 되어 있어 

한글이 왼쪽과 위에 자리했던 것을 순서를 바꿔야해서 간판들까지 모두 새로 해야 했답니다.

이곳은 교통시설은 잘 되어있지만 벼농사등을 추수할 때면 아직도 사람의 손으로 해야 됩니다.

 

느낌대로라면 그들은 그들대로 시진핑 주석이 최고라 믿으며 살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1. 먹는 것으로 사기치는 자

2. 강간하는 자

3. 마약하는 자등은 사형에 처한다는 가이드 말. 

 모든 법에는 부작용이 따르겠지만 공산국가니까 가능하지 싶습니다.

1인 통치시대는 계속 이어질 것 같은 예감?

 

어찌됐건 아무리 애를 써도 백년 살기 힘듭니다.

부러운 삶도 있고 안타까운 삶도 있고 정답이 있겠는지요?

나는 그저 작은 사람이므로 내 몸과 마음의 건강 지키며 더 좋은 사람이 되려 애쓰며 살겠습니다.

 

모두의 평화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