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 / 릴케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으시고
들녘엔 바람을 풀어 놓아 주소서.
마지막 과일들이 무르익도록 명(命)하소서
이틀만 더 남국(南國)의 날을 베푸시어
과일들의 완성을 재촉하시고, 독한 포도주에는
마지막 단맛이 스미게 하소서.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혼자인 사람은 그렇게 오래 남아
깨어서 책을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이며
낙엽이 흩날리는 날에는 가로수들 사이로
이리저리 불안스레 헤매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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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점 정리
작자 : 릴케 (Rilke, Reiner Maria, 1875-1926)
형식 : 번역시는 자유시, 서정시
운율 : 번역시는 내재율
성격 : 종교적 형이상학에 기초를 둔 낭만적, 신비적, 종교적, 지성적
어조 : 경건한 기도조의 목소리.
심상 : 비유적, 상징적 심상이 사용됨. '해시계'는 계절을 '남국의 날(햇볕)'은 신의 은총을 비유했고,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영혼의 완숙을 갈망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상징함.
특징 : 대조의 기법 [자연의 가을(자연의 성숙) ↔ 인간의 가을(성숙하지 못한 시적 자아)] 그리고 인간의 유한성이라는 근원적이고 무거운 주제가 평이한 시어들을 통하여 차분하게 표현되고 있고, 경건한 기도조의 어조가 영혼의 완숙을 갈망하는 내용과 적절히 조화를 이룸.
제재 : 가을의 정감
주제 : 가을에 느끼는 서정으로 인간의 실존 깊숙이 자리잡은 근원적 고독, 신의 섭리와 인의 근원적 고독에 대한 성찰, 또는 인간의 한계에 대한 성찰.
구성
제1연 : 가을의 도래(해시계 : '계절'의 의미)
제2연 : 만물의 완전한 성숙의 기원
제3연 : 외롭고 쓸쓸한 가을, 고독한 자아 그리고 구원의 기도
시상의 전개 : 1연과 2연은 온갖 곡식과 과일이 익어 가는 가을의 맑고 풍성함을 노래하여, 외적으로 충실한 계절, 가을의 특성을 표현하였고, 3연은 낙엽이 뒹구는 가로수의 길을 방황하게 될 집없는 사람과 고독한 사람을 그려 가장 고독한 계절로서 가을의 특성을 표현하였다.
그러나 3연의 고독에는 비애, 절망 같은 감상이 배제되었다. 글을 읽고, 편지를 쓰고, 가로수 길을 낙엽과 함께 지니는 고독, 이러한 고독은 고독을 비관하는 사람의 고독이 아니라 고독을 수용하는 사람의 고독이다. 오히려 내적 충실을 위하여 고독을 희구하는 사람의 고독이다.
이 시는 가을의 풍성함과 쓸쓸함을 극단적으로 대비시키고 있다. 시인은 오히려 쓸쓸함과 고독 속에서 인생의 참된 의미를 추구하고 있다. 진정한 고독의 체험을 가진 자만이 신과 자연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을 향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근원적인 방황과 실존적인 불안조차 긍정하는 것이다.
내용 연구
주여(릴케가 생각한 신은 주 예수를 향한 믿음으로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생명에 충실함으로써 얻어지는 범신론적인 것이었다. 그의 시가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받으며 끊임없는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본다.), 때가 왔습니다[가을이 온 것에 대한 깨달음의 표현. 작가는 만상(萬象) 속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고, 언제나 몸 가까이 있는 신을 느끼고 있다. 여기서 '때'는 결실(結實) 또는 완성의 계절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만물을 성숙하게 한 신의 조화에 대한 경탄. 만물을 성숙하게 한 긴 여름 동안의 당신의 은총은 위대하였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으시고[해 시계는 규칙적으로 회전하는 태양을 비유한 말로, 자연의 질서 있는 순환에 신의 섭리가 작용함을 뜻함. 또는 이제 서늘한 그늘을 주십시오. 서늘한 가을이 되었음을 나타낸다.]
들녘엔 바람을 풀어 놓아 주소서. - 신에의 찬송
마지막 과일들이 무르익도록 명(命)하소서
이틀만 더 남국(南國)의 날을 베푸시어[만물을 완전히 영글게 해 달라는 기원으로, '성숙'에 대한 시인의 간절한 기원이 드러나 있다. 이틀만이라는 말에는 짧은 며칠 동안만, ' 완성'을 위한 최소의 시간'이란 의미로 쓰이기도 함. . 남국의 날을 베푸시어를 '햇볕을 주시어'로 번역한 시도 있음. 햇볕은 신의 은총을 상징]
과일들의 완성을 재촉하시고, 독한 포도주에는
마지막 단맛(성숙의 미. 완숙미를 의미함)이 스미게 하소서. [독한 포도주에는 - 스미게 하소서 : 충분히 성숙된 만물에 존재의 본질적 의미가 구현되는 상태를 추구함. 절대자에 대한 기원의 자세가 강조된다.] - 풍성한 가을에 대한 소망 - 외부 세계의 풍성함
지금 집(정신적 안식처)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아직도 자신의 안식처를 갖지 못한 사람은 이제 그러한 안식처를 마련할 만한 겨를이 없습니다. 즉 불완전한 상태에 있는 인간의 불안과 공허감을 나타내었다. 여기서 '집이 없는 사람'은 존재의 거처를 잃어버린 고독한 인간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신에 대한 겸허의 태도로 볼 수 있다.]
지금 혼자인 사람은 그렇게 오래 남아
깨어서 책을 읽고, 긴 편지(자아 성찰을 의미하는 것으로 '자신과의 대화'로도 해석 가능)를 쓸 것이며 [깨어서 책을 읽고(잠자지 않고,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이며 : 겨울을 맞는 인간의 고독, 불안감을 나타내고, 그러한 고독을 극복하고자 하는 시인의 의지와 내적 충실의 자세가 잘 드러나 있다. 영혼의 완숙을 위해서 인간이 겪어야 할 고독과 번민과 갈등의 구체적 모습이다. ]
낙엽이 흩날리는 날[낙엽이 흩날리는 날(바람) : 종언을 재촉하는 시간의 뜻이 숨어 있다. '낙엽이 흩날리는 날'은 '바람에 불린다'는 '방황과 고독'을 상징하기도 함. 시마다 번역의 차이가 있다. 불안스레 헤매인다는 것은 인간의 실존적이고 근원적인 방황을 상징하는 말. 여기서 실존이라는 말은 철학에서는 사물의 본질이 아닌, 그 사물이 존재하는 그 자체라고 말하고, 스콜라 철학에서는 가능적 존재인 본질에 대하여 현실적 존재를 뜻한다. 실존 철학에서는, 개별자로서 자기의 존재를 자각적으로 물으면서 존재하는 인간의 주체적인 상태. ]에는 가로수들 사이로
이리저리 불안스레 헤매일 것입니다.[낙엽이 흩날리는 날에는 - 길을 헤매일 것입니다. : 고독한 인간의 근원적인 방황과 실존적인 불안 상태를 표현한 말이다] - 인간의 실존적 고독 - 내면 세계의 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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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번역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 여름은 참으로 길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십시오.
들에다 많은 바람을 놓으십시오.
마지막 과실들을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이후로도 오래 고독하게 살아
잠자지 않고, 읽고, 그리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바람에 불려 나뭇잎이 날릴 때, 불안스러이
이리저리 가로수 길을 헤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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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와 감상
릴케 자신 스스로 "예술가에게는 깊은 외로움이 없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듯이. 릴케의 작품에는 고독을 노래한 시가 많다. 이 시도 그러한 계열로, 1902년 조작가 로댕을 만나 사물을 보는 눈과 자세에 대하여 배운 바를 시 창작에 응용한 작품으로 이 시는 사물을 명확하게 꿰뚫어 보려는 노력과 현실 세계를 진지하게 살아가려는 결의를 표명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가을의 계절 감각을 인생살이에 연결시킴으로써, 고독의 깊은 의미를 표현한 작품이다.
이 시는 자연의 변화 앞에서 여러 가지 감회를 가지게 되는 시인의 성찰이 두드러진 역할을 하는 시로서 종교적이고 경건한 분위기가 시 전편에 흐른다. 시인은 가을이라는 계절의 이중적 속성, 즉 풍성함과 황폐함을 외적 세계와 내적 세계에 대비시켜 우수와 고독을 형상화하였다. 인간이 결실을 거두기 위해 흘린 땀과 대비하여 무수한 능력을 지닌 신의 권능을 생각하고 있다.
작품의 1연은 가을이 도래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제 긴 여름 동안의 노고를 쉬고 이제 들에 서늘한 바람을 불게 해 달라는 것이다. 2연은 이미 익어 가고 있는 만물을 완전히 익도록 해 달라는 기원이다. 1연과 2연이 외적 세계의 풍성함과 결실을 노래한 것이라면 3연은 내적 세계의 고독을 노래하고 있다. 여기서 고독은 극복되어야 할 '외로움'의 감정이 아니라 인간의 실제적 고독(독서와 편지, 사색을 포함한 고독)으로 제시되어 있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이란 영혼의 완숙을 갈망하며 방황하는 불안정한 존재인 고독한 인간을 나타낸다.
따라서, 고독한 사람은 자기 나름대로 내적 충실을 기하며 살아갈 것이라고 노래하고 있지만 그 고독한 사람이 바람에 불려 날려 가는 나뭇잎처럼 불안하고 방황할 것이라는 의식이 나타나 있다. 결국 이 작품은 가을이라는 결실과 조락(凋落)의 계절에 인간 존재의 본질을 생각하고 투시하는 서정적 자아의 경건성과 구도 정신이 간결하고 평이한 표현 속에 잘 드러난 서정시라고 평가할 수 있다.
심화 자료
Rainer Maria Rilke 1875~1926
독일 시인. 보헤미아 수도 프라하 출생. 청년기 이후로는 유럽 각지를 떠돌아다니며 각 지방의 문화를 흡수한 반시대(反時代)·반통속적인 시인이다. 병약한 유년시절을 보냈으며 커서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여 육군학교에 입학했으나 중퇴한 뒤에 시를 쓰기 시작, 19세 때 시집을 출판했다. 프라하대학·뮌헨대학 재학 중에는 시·산문·희곡·평론 등을 썼고 몇 권의 책도 냈으나, 모두 신낭만파·자연주의·유겐트슈틸 등 그 시대와 전시대의 양식을 모방한 데 그쳤다. 1897년 뮌헨에서 알게 되어 일생동안 우정을 나눈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와 사귀는 동안 개성있는 일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르네상스회화에 눈을 뜬 그가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동안 루에게 보내기 위해 계속해서 쓴 《피렌체일기(1898)》, 루와 동행한 2회의 러시아 여행을 토대로 쓴 《시도시집(時禱詩集, 1905)》, 단편집 《하느님 이야기(1900)》 등이 이 때의 대표작인데, 방종하고 낭만적·신비적 감수성에 바탕을 둔 범신론적(汎神論的) 세계인식 방식이 두드러진다. 체코민족 독립운동에 대한 공감을 표시하는 단편집 《프라하의 두 이야기(1899)》에는 훗날의 작품에는 나타나지 않는 사회적·정치적인 관심이 엿보인다. 1900년 브레멘 교외 보르프스베데 예술가마을에서 그 시대의 예술과 접촉하게 된 것이 인생과 일에 새로운 전기를 가져왔다. 그 고장의 조각가 C. 베스토프와 결혼하고, 화가평전 《보르프스베데(1903)》를 완성한 뒤 《로댕론(1902~1907)》 집필을 의뢰받고 파리로 갔다.
이미 《형상시집(形象詩集, 1902)》의 몇 편의 시에서도 그때까지의 무한정한 정감유로(情感流露)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즉물적인 표현이 시도되고 있었지만, F.A.R. 로댕 밑에서 배운 손재주의 중요성과 <보는 일>에 바탕을 두어 《신시집(新詩集, 1907)》의 시를 계속 써 나갔다. <사물시(事物詩)>라고 하는 조소풍(彫塑風)의 조형성(造形性) 강한 이들 시는 자아(自我)와 대상을 동일시하고 감정을 객체화하려는 의지의 산물이며 대도시 파리가 만들어낸 현대사회의 생존 불안에 대한 대항물로서 의도된 작품이다.
그 시기의 《말테의 수기(1910)》도 역시 불안한 가운데서 로댕의 조각수법을 산문에 적용하여 새로운 현실성을 얻으려는 의지에 의거한 것이다. 그 뒤 10여 년 동안에 발표된 시집은 《마리아의 생애(1913)》뿐이지만 《말테의 수기》를 완성한 직후와 스스로 군무에 종사했던 제 1차 세계대전 때를 제외하고는 창작력이 쇠퇴하는 일이 없었다. 《신시집》에서 시에 대한 형식성을 초월한 새로운 시작법(詩作法)을 모색했는데, 거기서는 개개의 형상(形象)에 의지하였던 생의 불안을 직접 존재문제로 다시 수용하면서 아프리카와 에스파냐로 여행, P.R. 피카소의 그림이라든지 J.C.F. 횔덜린, P.A. 발레리의 시와의 만남 등에 의해 쌓은 정신적 양식을 바탕으로 하여 10년에 걸쳐 《두이노의 비가(悲歌)》가 이루어졌다. 동시에 쓰인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1923)》 등에서는, 삶과 죽음을 꿰뚫는 <열려진 공간>이라는 독자적인 시와 존재의 공간이 시사되어, 갖가지 형상으로 그것을 환기시키고자 했다.
실존주의와도 통하는 내용이므로 그의 시는 M. 하이데거 등에 의해 자주 철학적 고찰의 대상이 되었다. 그의 시작(詩作)의 가치는 무엇보다도 독일어 표현능력을 높였고, 표현할 수 있는 시어의 영역을 확대시킨 점에 있다. 그것은 종래의 양식 또는 언어표현에 의해서는 파악이 불가능하게 된 근대도시의 생활감각에 대하여 신체감각 자체를 지성화하는 차원에서의 한 표현의지의 성과이다. 특히 후기의 시에서 볼 수 있는 스스로 육체성을 갖춘 낱말에 바탕을 두고 시의 세계를 만들어 나가는 시법(詩法)은 유럽 근대의 로고스중심주의를 벗어나 현실적 재구성을 도모하려는 현대시 방법과 직접 연결되는 것이다. 만년은 주로 스위스 시에르 근처의 뮈조트성관(城館)에서 보냈다.
릴케의 시풍과 우리 나라 시인들
릴케 시의 일반적인 특징은 종교적 신비주의(神秘主義)로서 만상(萬象)속에 신이 깃들여 있다고 믿고, 그러한 신을 항상 몸 가까이 느끼며, 만상을 애정으로 직관(直觀)함으로써 그의 영적(靈的)인 세계를 넓힌 데 있다. '가을날'에 있어서도 신과 대면하여 담화를 하는 듯한 친근한 느낌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시는 첫째 연(가을의 도래), 둘째 연(자연물에의 애정), 셋째 연(고독)의 세 가지 요인으로 형성되어 있다.
이러한 시풍은 우리 나라 근대시에 큰 영향을 미쳤고, 윤동주, 김춘수, 김현승 등에 영향을 주었다. 윤동주선생은 순수한 동심의 추구라는 측면에서 릴케의 시를 수용하였고, 김춘수는 사물에 내재한 존재의 본질에 대한 실존적 탐구로 릴케와 같은 맥락에 놓인다. 김현승은 인간의 본질적인 고독에 대한 경건한 성찰의 측면에서 릴케의 영향을 받았다.
작품에 나타나는 릴케의 신(神)의 의미
릴케의 신은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으로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 자기의 생명에 충실함으로써 얻어지는 범신론적인 것이다. 그의 시가 모든 사람에게 사랑 받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며, 그의 시가 생명을 가지고 사물로 하여금 스스로 빛을 발하게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그의 신은 반드시 그의 시에 동반되며, 주로 어두움의 심상으로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그는 형상과 불꽃, 짐승과 시인 자신, 모든 인간과 그들이 가진 권력조차도 모두 어두움의 소산이라고 생각한다. 그에 따르면, 모든 사물은 그 본질의 깊은 곳에 어두움이 발견될 때 비로소 존재할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릴케가 인식의 끝을 신으로 본 때문이다. 인식의 길은 어렵다. 하나의 사물이 지닌 본질과 그 온갖 비밀을 알아챌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길은 끝난다. 그 험하고 고단한 길이 릴케에게는 어두움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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