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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조 ◑23

겨울 저수지에는 보름달이 산다 - 김수엽 겨울 저수지에는 보름달이 산다 김수엽 이때쯤에 제 몸을 감추기 시작한다 가장자리 수초부터 천천히 가운데로 두툼한 뚜껑을 씌워 험한 세상 막아선다 응고되지 않은 바람 살짝 와서 두드리면 안아주었던 눈꽃가루 손에 들려 보내고 햇볕에 땀 흘리면서 몸 풀 때를 생각한다 보관해 둔 생명체 풀어 놓는 봄이면 버드나무 물속으로 뛰어들어 출렁이고 노을도 둥은 보름달도 서둘러서 올 것이다 2023. 8. 30.
3월이 오면 - 김영교 (1935~ ) 3월이 오면 김영교 기쁜 소식 한 배낭 지고 까치 새가 앉아 울고 햇살도 안아 보고 달빛도 안아 보고 기왕에 벗을 것이면 맨발 벗고 오려무나 2023. 3. 7.
정야(靜夜) 정야 김원각 여기는 산협을 돌아 사라지는 물소리뿐 향연 너머 연화봉은 장승처럼 앉았는데 그 위로 카랑한 별이 금을 긋고 흐른다 이따금 대숲 속을 빗질하는 바람 소리 골 안은 아늑해도 다시 낯선 어느 벌판 세월도 밀어붙이고 석탑 하나 서 있다 수정빛 정기 어리는 범영루 휘엿한 허리 눈에는 안보이나 선연한 움직임들 그 깊이 알 수 없는 속 쌍여 가고 있었다 2023. 3. 7.
임자도 - 이한성 질척이는 갯벌의 소금기를 털고 있다 끈적인 점액질의 예감으로 일어서는 거세된 꽃게의 울음 옆 걸음을 치고 있다 동상이 든 바람의 까치발을 보고 있다 무명천 하얀 길을 맨발로 밤새 걷던, 먼바다 등대 불빛은 수평선에 떠밀리고 명사십리 실모래가 황사처럼 날고 있다 어둠의 깊이만큼 두려움을 잠재우면 등뼈가 부러진 수초 고개를 들고 있다 2023. 3.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