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마지막 달이다. 새해 계획을 세우기도 전에 몸과 마음이 분주하다. 이 시점에서 한번쯤 소란함을 끊고 싶다면? 이번 주부터 3주간 조용한 곳으로 가려고 한다. 해가 가장 늦게 지는 섬, 가거도에서 2016년을 준비하는 것도 좋겠다.
가거도항 |
◆ 서울보다 중국이 가까운 곳
목포에서 141㎞, 배로 4시간 물길이다. 오전 8시10분에 배를 타고 비금도, 도초도, 다물도, 흑산도, 상태도, 하태도를 지나면 비로소 가거도에 도착한다. 바닷길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멀미약을 먹고 일찌감치 곯아떨어지는 것이 상책이다. 배의 흔들림에 겨우 적응할 때쯤 위풍당당한 바위산(회룡산)이 여행자를 맞이한다. 드디어 땅에 발을 올린다. 여기가 국토의 최서남단, 가거도다.
총인구 500명, 340세대, 3개의 반(리)으로 구성된 가거도는 원래 임씨와 고씨의 집성촌이었다. 1반 대리마을에는 5분의 4인 400여명이 살고 2반 항리마을과 3반 대풍마을에 나머지 인구가 산다. 겨울에는 춥고 바람 부는 항리와 대풍마을에서 나와 항구 근처 대리마을에 머물거나 아예 뭍으로 가서 생활하다 들어오는 사람들도 있다. 대리마을에 며칠 머물면 동네 사람을 다 알 것 같지만 그 정도로 작은 섬은 아니다. 일제 강점기 때는 흑산도를 ‘대흑산도’, 가거도를 ‘소흑산도’라고 멋대가리 없이 부르기도 했다는데, 원래 ‘아름다운 섬’이라는 뜻의 가가도(嘉佳島, 可佳島)였고 1896년부터는 ‘가히 살 만한 섬’이라는 뜻으로 가거도(可居島)로 불러왔다.
가거도항 선착장 |
가거도는 중국과 가깝다. 가거도에서 광화문까지의 직선거리가 426㎞인 반면 중국 연안까지의 직선거리는 385㎞, 상하이 인민광장까지는 463㎞다. 이곳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상하이의 새벽 닭소리가 들린다"고 말한다. 중국과 가깝다 보니 ‘뻥’도 중국 사람을 닮아가나 보다. 실제로 가거도 근해에서 중국 어선들이 어업을 하다 자주 문제가 되기도 하고 풍랑이 일 때는 중국 어선들이 대피하러 들어오는 항구이기도 하다. 지금은 법으로 규정해 중국 어부들이 배에서 내릴 수 없도록 돼 있지만 옛날 이곳 사람들은 그런 상황이 상당히 불안했을 것 같다. 육지로부터 떨어진 탓에 한국전쟁도 소문으로만 듣고 지나갔다고 하니 이 섬의 유일한 위협은 타지 어선의 대피소식이었겠다.
◆ 아름다운 산과 섬이 지켜주는 가거항
가거항은 방파제가 예술이다. 물론 사람이 만든 방파제는 자주 파손된다. 몇번 무너진 흔적과 함께 늘 어느 부분은 보수 중이다. 하지만 진짜 ‘예술’은 자연의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는 두개의 섬과 산이다. 항에 들어서면 정면으로 대리마을이 펼쳐져 있고 왼쪽 끝에 반녹섬, 녹섬, 회룡산이 보인다. 그리고 반대편 끝, 그러니까 선착장 쪽으로는 장군봉이 우뚝 솟아 있다. 회룡산에서 장군봉까지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대리마을이 자리를 잡았고 섬과 봉우리가 항구마을을 아늑하게 감싼 모습이다. 내항에는 배들이 정박해 있다. 툭 튀어나온 오렌지색 구조물이 뭔가 했더니 인양기란다. 아무것도 모르는 도시의 여행자는 ‘요즘 공사중인가?’ 했을 터. 이것은 태풍이 올 때 배를 끌어올리는 항구의 주요 시설물이다. 인양기 아래에 가면 바다 일을 마치고 올라온 배들이 가지런히 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가거도 선착장과 대리마을 |
가거항은 격랑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는다. 바람이 불어 배가 오지 않는 날에도 평화로운 수평선을 유지한다. 산과 봉우리가 ‘어디 감히!’ 하며 대리마을을 지켜 주는 덕이겠다. 외유내강의 미덕이 있는 가거항은 바삐 지나가 버리기엔 아까운 곳이다.
◆ 가거도의 캐피탈, 대리마을
대리마을은 가거도항이 있는 1구다. 인구도 가장 많고 경찰서, 출장소(주민센터에 해당), 보건소 등 주요시설이 밀집해 있다. 여행자들은 등반이나 트레킹, 낚시를 위해 다른 곳으로 급히 가려고 할지 모르지만 대리마을에 하루 이틀 머물기를 권한다. 특히 마을을 하릴없이 산책해 보면 좋겠다. 언제 또 국토의 최서남단 마을까지 와 보겠는가.
대리마을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항구에 가까운 바닷가 쪽이고 다른 하나는 언덕을 오르는 골목이다. 이 중 바닷가는 가거도의 다운타운이다. 얼마 전 예능프로그램 <삼시세끼>에서 차승원, 유해진, 손호준이 만재도로 향하던 중 잠시 내렸던, 일탈의 기쁨을 맛보며 거닐던 동네가 바로 이곳이다.
계단도 출입문도 없는 새집 |
돌담과 슬레이트지붕 회룡산이 보이는 대리마을 |
가장 바깥쪽으로 늘어선 집들은 민박집과 식당들이다. 대부분 민박집이 식당을 겸한다. ‘백반’은 계절마다 가거도에서 많이 나는 나물과 싱싱한 생선찌개가 주요 반찬이다. 이곳에서 매운탕은 된장찌개·김치찌개 같은 존재다. 생선이 일상 반찬이지만 어느 집에서도 수조는 찾아볼 수 없다. 천연 수족관이 코앞인데 집에 가둬서 시들시들 살려놓는 것이 무슨 소용일까. 보통 그날 잡은 생물로 회나 찌개를 만들거나 바닷바람에 살짝 말린 생선을 구워 먹는다. 힘들게 가두고 키워서 잡아먹는 일은 하지 않는다. 선착장 쪽에서는 조기, 우럭, 볼블락(열기), 바닷장어 등 계절마다 잘 잡히는 물고기와 함께 그물·빨래가 사이좋게 바닷바람에 말라가고 방파제 쪽에는 컨테이너집들이 골목을 이루고 있다. 창고인가 싶었는데 문 하나마다 주인이 따로 있는 냉장고다. 해산물을 먹을 것, 팔 것, 손질할 것으로 나눠 보관하는 이들의 재산이요 보물창고인 셈이다. 방파제 쪽으로는 커다란 배 모양을 한 건물이 있다. 1층은 소각장, 2층은 멸치잡이 노래 전수관이다. 가거도 멸치잡이노래는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 22호로 지정됐고 이곳에 전수관이 있다.
대리마을 골목 |
언덕으로 이어지는 골목은 좁은 돌담길이다. 구불구불 하고 가파른 편이라 발길을 조심해야 한다. 소박한 돌담과 시원한 바다를 조망하는 집들은 일조권으로 시비 붙을 일이 애초부터 없다. 가파른 언덕 마을이라 앞집이 시야를 가릴 턱이 없기 때문이다. 집 간의 거리도 가까워서 이웃과 가까워질 수밖에 없겠다. 모양새로만 봐선 복닥복닥 시끄러울 것 같은데 이 동네의 느낌은 한적하고 고요하다. 빈집이 많아서 그렇다. 남은 사람들은 예전에 옆집이었을 폐가 마당을 텃밭으로 일궜다. 경로당 근처에 조그만 누각이 하나 있는데, 들어가는 문도 계단도 없다.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 창문으로 들어가서 먹고 놀고 쉬는 곳이라고 한다. 여름에 시원한 정자 역할을 한다는데, 드나드는 방법도 모양도 독특해서 마을사람들은 이를 ‘새집’이라고 부른다. 과연 새들이나 자유롭게 드나들 만한 마을사람들의 귀여운 놀이터다.
빈마당에 일군 텃밭 |
가거도에는 대리마을 외에 마을이 두개 더 있다. 섬 생활이 다 똑같을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다. 저 끝엔 또 어떤 풍경이 있을까. 어떤 사람들이 있을까. 이곳에 조금 더 머무르고 싶은 이유다.
[여행 정보]
가거도 가는 법
목포여객선에서 오전 8시 10분 쾌속선 승선 - 12시 20분 도착
운임: 6만1300원
남해고속훼리와 동양고속훼리 두 회사가 짝수일과 홀수일에 번갈아 운항한다.
남해고속훼리: 061-244-9915 / http://www.namhaegosok.co.kr
동양고속훼리: 061-243-2111 / http://www.ihongdo.co.kr
가거도
문의: 061-275-9300
신안문화관광
문의: 061-271-1004 / http://tour.shinan.go.kr
낚시
인원수에 따라 비용이 달라질 수 있다.
갯바위 낚시: 8만원~ / 배낚시 10만원~
해림낚시: 010-9882-2770
제일낚시: 061-246-3437
가거아일랜드: 010-6780-7971
해상관광
식당·민박집을 통해 문의하며 인원수에 따라 비용이 달라질 수 있다. 동절기에는 운영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미리 확인이 필요하다.
해상관광가격: 1만5000원
주요 시설 연락처
목포선박운항관리실(풍랑 정보, 쾌속선 운행 여부 체크) 061-240-6031
목포여객선터미널 1666-0910
신안군가거도출장소 061-240-8620
● 숙박과 음식
대부분 숙박 시설은 1층에 식당, 2층에 민박을 겸하고 있다. 이곳에서 가거도 육상 관광(이동), 낚시, 스킨스쿠버 등 모든 여행 정보를 문의하고 예약할 수 있다. 아침식사는 숙박 서비스에 포함되지 않고, 별도로 사먹어야 한다.
객실: 4만원 ~
백반: 8000원 / 자연산회: 싯가 / 매운탕: 싯가
중앙장: 010-9882-5467
동해장: 010-4610-5056
까꿍이네 민박 010-3606-2362
창신장 010-2044-5466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1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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