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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 & 예술 ◑

시조의 명칭과 형식에 관한 쟁점 문제

by sang-a 2017. 1. 8.

 

 시조의 명칭과 형식에 관한 쟁점 문제

 

                                문학평론가. 시조시인. 가톨릭대학교 명예교수.

                                세계전통시인협회 한국본부 회장  / 김봉군

 

 

 

 

1. 여는 말

시조의 명칭의 문제가 제기되는 까닭은 근현대 시조가 창 (唱)을 잃은 데 있다,

또, 형식에 관한 쟁점 과제는 정격 (正格) 복원 (復元)여부다. 시조 형식의 표준화 문제다.

  이 문제는 역사 원리로서의 지속 (duration)과 변이 (variation) 규정적 정의 (定義)와 현장적 정의에 

  대한 관점이 정립을 요구한다.

    문화사의 원리는 흐름이다. 문학사는 문화사의 한 줄기로서 흐름의 원리를 따른다. 이 흐름은

    반역사적 변혁의 혁명을 거부한다.

    문학상의 쟁점도 문화의 원리로 풀어야 한다.

 

2. 문학사의 정의 문제

  문학에서 정의론의 기본 관점은 네 가지다. 곧 대상 중심의 반영론, 작가 중심의 표현론,

  독자 지양의 효용론, 작품 자체의 자율성과 가치 중립성을 강조하는 존재론이다.

  시조 이론은 이 네가지 관점을 통합할 때 그 실효성이 있다.

  이 밖에 정의에 대한 새로운 관점들도 대두된다.

  ① 규정적 정의 (規定的 定義 ) ,stipulative definition ),

  ② 기술적 정의 (記述的 定義, descriptive definition ),

  ③ 사회적 정의 (社會的 定義 , social definition )와 수용 이론 (受容理論, reception theory),

  ④ 화행론적 정의 (話行論的 定義 , speech - act theory ),

  ⑤ 문학 기호학적 정의 (semiotics of Iiterature ) 적 정의,

  ⑥ 현장적 정의 (現場的 定義 , fidid definition ) 들이 그것이다.

 

위의 ①항은 문학이라는 단어의 정적인 특징 파악에 치중하는 특성 정의(trait definition)를 가리키며

가장 고전적인 관점의 결과다.

②는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사용하는가를 존중하는 용도 정의 (definition)다.

③은 문학의 사회적 과정을 중요시하며

④는 작품의 말하기 전 과정에 착목한다

⑤는 문학적 발화의 문학성 파악이 중요시된다

⑥은 문학의 정규적 성격에서 벗어나 사람들이 현장에서 판단하는 것에 따르자는 주장이다.

 

3. 시조의 명칭과 형식

 시조의 명칭에 관한 논란은 비교적 단순하나, 형식 문제는 비중있는 쟁점 과제다.

 

1) 시조의 명칭

  시조 (詩調)라는 명칭은 조선 후기 문인 석북 신광수 (1712~1775, 숙종 38 ~ 영조 51)의

 <석북집 (石北集) . 관서악부 (關西樂府)1774. >에 처음 보인다.

 그때까지는 단가.가곡. 악. 악장. 창. 영언. 신조.신성.신곡. 신번 등으로 불렸다.

  시조는 조선 후기 명창 56인에 드는 한양 사람 이세춘의 노래에서 유래하였다.

  이는 신광수의 관서악부의 기록에 따른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다 알려져 새로울 것이 없다.

   문제는 창을 잃은 근현대 시조를 그대로 '시조'라 지칭해도 되는가 하는 데 있다.

  미락자요 전통시론의 거두인 문학평론가 윤재근은 시조와 자유시를 뾰족하게 구분함과 아울러

  '시조시인'이라는 명칭조차 마땅치 않으므로  '시조인'으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조와 자유시에는 노래하기 (영언)와 뜻을 말하기 (언지)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施言志,  歌永言 , 律和聲  시언지 가영언  율화성

 

<서경 (書經), 상서 (尙書)>에 있는 말이다.

   시는 뜻을 말하고, 노래는 말을 읊는다는 것이다.

 

凡音之記,  有人心生也,  人心之動,  物使之然也

범음지기   유인심생야   인심지동   물사지연야

 

<예기 (禮記) >의 말이다.

 무릇 소리의 일어남은 사람의 마음이 움직임에서 말미암는다. 사물에 감응하여 움직임, 곧 인간의

 욕망이 곧 말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인간은 말하고 말을 읊게 되며 마침내 노래 ㅂ르게 된다.

서경은 시와 가를 구별하였으나, 우리는 시와 가를 떼어 놓지 않고 그냥 '시가(詩歌)' 라 하였다.

 서경에서 음률이 소리와 화합한다고 한 것은 시보다 가가 우선한다는 뜻이다.

 요컨데, 말하는 것보다 읊는 것이, 그보다 노래 부르는 것이 말할 수밖에 없는 인간 욕망의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것이다.

 

 까닭에 윤재근은 시조는 읊음 [영언, 永言 ]에 본분이 있다고 한다.

 윤재근의 시조와 시의 뜻매김은 철저한 규정적 정의에 따른 것이라 하겠다.

모더니터와 만나 거듭난 현대 시조와 율격이 두드러진 근현대시의 속세에 비추어 더 논의해야 할 과제다.  이와 달리, 창을 잃은 근현대 시조를 '시조시'로 명명하자는 견해도 설득력이 없지 않다.

  일찍이 자산(自山) 안확 (安廓)은 근대 시조를  '시조시'라 했고. 현대 시조시인과 연구자 가운데

 정봉래. 한춘섭 등이 같은 주장을 편다.

 이런 또 하나의 규정적 정의는 현장에서 수용되지 않는 것이 대세다.

 원칙이 타당하더라도 , 현장에서 수용되지 않고 근본을 훼손하지 않는 한 대세를 따르는 것이 순리다.

근현대 시조는 고시조의 변이된 실체로서 '시조'라 할 수밖에 없다.

문학사적 지속과 변이의 정상적 흐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