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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위에 부치는 글

by sang-a 2007. 3. 2.

 

 

 

눈 위에 부치는 글

 

                                                 / 김 나 연

 

눈 덮힌 산이 그리워 편지를 쓴다.

아름다운 것들을  다 내어주고

빈 가지로 서 있는 나목을 위해
눈꽃을 피워준 하늘이 있어 
꿈을 꾸듯 사람들은 겨울산을 찾는다.

 

아들의 친구 녀석이 심장 수술에 실패를 했다
유명한 박사 만나 수술을 하겠다고 두 달을 기다리며
헤진 살림나기 안에서  힘겹게 수술비를 마련했지만
여섯 시간이 지난 후  전해진 말은
최선을 다했지만 생명이 위험해 다시 덮었다는---

입술을 태워가며 기도하던 엄마와
아프고 서러워 눈이 팅팅 부어버린 아들--

 

눈 덮힌 산이 그리워 편지를 쓴다.
붉은 핏 자욱을 뚝 뚝 떨구며
가난은 빌딩 숲을 지나 후미진 골목 안

등을 구부려야만 들어갈 수 있는 집을 택했고
할 말을 잃은 외등은

창백히 서 있을 뿐이다.

무심한 자식의 목소리가 듣고파 노모가 먼저 전화를 하면
별 일 없느냐
별 일 없어요
그리운 마음을 깊숙이 묻고 헛 소리만이 수화기를 건넌다.

 

내일 아침이면
눈 덮힌 산에 빨간 눈의 토끼가
굴 속에 숨겨진 알밤을 만나기 위해 두 눈을 꿈뻑이고
두껍게 얼어붙은 얼음위에도

꽃눈을 피어나기를.

단풍진 잎들을 뿌린 가지 사이로 휑한 바람이 지나는

겨울 안에 부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