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왜 시조를 쓰는가
새삼스레 시를 쓰는 일이 내게 어떤 의미인가를 되물어본다. 무엇이 피 끓는 청춘의 열정을 송두리째 쏟아붓도록 유혹하였던 것일까. 무엇 때문에 안전장구나 보장장치 하나 마련되지 않은 폭발물을 끌어안고 그토록 많은 시간을 아파하였을까. 그나마 모두가 외면해 버린 시조를 붙잡고 씨름해 온 세월이 40년이라니 홀려도 단단히 홀렸던 것 같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가 시조를 선택한 데는 아마도 전공인 한국화가 지닌 정신적 동질성 같은 것이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우리의 자연을 스케치하고 필법을 공부하면서 가장 먼저 인지할 수 있었던 부분은 ‘자연이 지닌 놀라운 질서’였으니 말이다. 우리가 살아온 자연은 봄이 오되 정해진 날이 없고 날을 정하지는 않았지만 한 번도 겨울을 건너가는 법이 없었다. 어쩌다 강이 넘치지만 이내 제 길을 찾아 흘러가고 산은 산대로 일정한 기골과 근육을 지니고 있었다. 필법은 필법대로 과거를 통하여 미래를 열어 갔고 의식은 의식대로 보편적 가치를 그르치지 않았다. 그것은 묶지는 아니하되 벗어나지도 않는 위대한 질서였다. 이 같은 질서에 대한 이해는 자연히 형식에 대한 이해로 이어지고 우리 자연환경이 창출해 낸 민족시에 대한 신뢰로 귀결되었는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우리가 꿈꾸어 온 무한자유에 대한 허구성과 불안함을 동시에 느끼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 시절 나는 장르에 구속됨 없이 시와 소설, 수필과 아동문학에 이르기까지 공부하던 터라 이 같은 질서의식에 대한 자각은 시조라는 민족시의 선택을 용이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 선택과 판단은 지금도 유효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변함이 없으리라 믿고 있다. 그 같은 질서에 대한 이해와 신뢰로 인해 나는 한 번도 시조의 형식이 주는 제약 때문에 회의를 가져 본 적이 없었다. 주변의 문우들 대부분이 이미 대세가 기울었다며 자유시를 권할 때도 나는 오히려 긴 역사적 맥락에서 민족이 택한 의식질서를 믿고자 했다. 어쩌면 그것은 오랜 장마와 홍수로 인해 일시적으로 형성된 습지로 인해 쌀농사를 버리고 연을 심는 어리석음일지도 모른다는 조심성도 작용하였을 것이다. 사실 서구문명의 범람 앞에서 시조를 선택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놓아버릴 수 없는 화두는 단연 형식에 대한 해석이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의 경우 시조의 형식은 빨리 벗어버리고 싶은 제복과도 같은 불편함으로 받아들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7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민족의 보편적 정서 속에서 다듬어지고 숙성되어 온 검증 과정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담보가 아니겠는가.
2. 시조는 내게 어떤 의미인가
형식 질서에 대한 의구심이 사라지면 그다음은 그 그릇에 담을 내용물에 대한 관심이다. 시인은 그릇을 만드는 장인이 아니라 그릇 안에 담을 내용물을 만드는 요리사여야 하기 때문이다. 고시조가 자신의 생각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형식의 극히 공간적인 제한성을 지녔다면 오늘의 시조는 다중의 독자들을 상대로 한 인쇄문화를 빌리고 있다. 따라서 다양한 요구의 입맛에 부합하면서도 차별화된 미적 완성도를 지향해야 한다. 급속도로 서구화되어 가는 우리 입맛의 패스트푸드화를 어떻게 하면 우리 자연에 걸맞은 현대적 약선 요리로 되돌려 놓을 것인가. 지나치게 입맛을 따르면 몸에 해롭게 되고 그렇다고 너무 몸에 이로운 음식만을 추구하면 맛이 없는 법이 아닌가. 여기서도 중도(中道)의 지혜가 요구된다. 그러기에 나는 대체로 시조를 쓰는 일을 크게 두 가지 의미로 나눈다. 그 첫 번째 하나가 언어와 문자를 통한 수신(修身)의 의미이다. 시조를 쓰는 일이 결국은 내가 나를 다스리는 일에 다름이 아니다. 이를테면 꽃을 보면서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일도 결국은 나 자신 안에 잠재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 아름다움을 확장하는 일이다. 강을 보면서 그 유장한 흐름의 의미를 짚어내는 일 또한 나 자신의 무의식에 내재한 순종의 하심(下心)과 범람이라는 욕망과의 중도를 가늠하는 일에 다름이 아니다. 그것은 또한 자연 속의 자신을 파악하고 돌아보며 혹은 내다보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일이다. 되도록 화해하고 소통하는 법을 모색하고 검증하고 배워 나가는 한 방편이다. 왜냐하면 진실로 마음의 때를 말끔히 닦아낸 후 나 자신의 글을 보면 마음이 감추고 있는 그림자까지도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 자신을 자연의 순연한 물성 속에 온전히 세울 수 있기를 꿈꾸어 보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가장 경계하는 부분은 시조가 자신의 감정을 아무렇게나 내뱉어놓은 휴지조각이나 손수건이 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이다. 내가 시조를 쓰는 두 번째의 의미는 시대에 대한 진단과 그에 부합한 처방이다. 의사가 사람의 아픈 몸을 진단하듯이 시인은 시대의 아픈 정신을 진단해야 한다. 물론 아프지 않은 몸도 예방적 차원에서 진단하듯이 시대의 정신 또한 설사 아프지 않더라도 진단함이 마땅하다. 그리고 그 진단은 정확해야 하고 신속해야 한다. 오진(誤診)의 개연성에 대해서도 세심히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에 따른 합당한 처방은 더욱더 완벽해야 한다. 몸에 대한 의사의 잘못된 처방은 최악의 경우라도 한 사람만 희생될 수 있지만 시대의 정신을 오진하고 잘못된 처방을 내리면 한 국가와 민족이 망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도 내가 경계하는 것은 독자가 원하는 대로 아편을 처방하는 일이다. 판단력이 부족한 어린이에게 달라는 대로 사탕을 먹여 이빨을 모두 썩게 하는 낭패는 시인이 감당할 몫이 아니다. 좋은 시조란 아프고 결린 몸과 정신을 풀어주는 경건한 침이 되는 것이다.
3. 시조,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
오늘의 시조시단은 그 어느 때보다 양적인 풍요를 구가하고 있다. 하지만 그 속을 헤집고 들면 금세 풍요만큼 빈곤 또한 함께 느끼게 된다. 너무 자기 카타르시스적 작품들이 많기 때문이다. 보여줄 것도 없으면서 봐주기를 강요하고 들려줄 내용도 없으면서 시선을 붙들고 있으면 다들 고개를 돌리기 마련이다. 비록 미완성일지라도 관찰하고 사색하고 사유하고 통찰을 겨냥한 각고의 노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조금만 노력하면 금방 드러나게 되어 있는 취약한 시조시단의 구조에 편승하여 적당히 안주하는 자세를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제 시조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것이다. 글로벌화가 과속화되면 될수록 민족문화의 차별화를 요구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지금껏 너무나도 소중한 유산이자 자산인 시조를 방치해 두었다. 이제부터라도 새로운 문화의 수요에 대비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절대적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평론에 의존하는 일부의 창작 태도 또한 지양됨이 마땅하다. 어쩌면 그것은 창작의 무한자유를 저해하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내 작품들이 내가 말한 시조의 함정에 스스로 갇혀 버린 셈이지만 분명한 것은 시조를 다시 우리 민족문학의 중심에 세워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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