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새벽에 길을 떠난다 / 박노해
제 몸을 때려 울리는 종은
스스로 소리를 듣고자 귀를 만들지 않는다
평생 나무와 함께 살아 온 목수는
자기가 살기 위해 집을 짓지 않는다
잠든 아이의 머리맡에서 기도하는 어머니는
자기 자신을 위한 기도를 드리지 않는다
우리들, 한번은 다 바치고 돌아와
새근새근 숨쉬는 상처를 품고
지금 시린 눈빛으로 말없이 앞을 뚫어 보지만
우리는 과거를 내세워 오늘을 살지 않는다
우리는 긴 호흡으로 흙과 뿌리를 보살피지만
스스로 꽃이 되고 과실이 되고자 하지 않는다
내일이면 모두가 웃으며 오실 길을
지금 우리 젖은 얼굴로 걸어 갈 뿐이다
오늘
다시 새벽에 길을 떠난다
참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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