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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 산책로 ◑

1000살 먹은 팔만대장경

by sang-a 2007. 6. 30.

 

세계기록문화유산 등재된 팔만대장경-제경판
[불교신문 | 2007-06-16 00:26:49]
 

 

 지난 14일 합천 해인사에 봉안돼 있는 팔만대장경과 제경판의 세계기록문화유산 등재가 결정됐다.

직지심체요절에 이어 한국불교유물이 우리나라를 넘어 인류가 소중히 보존해야할 가치 있는 유산으로 인정받게 된 두 번째 사례다. 이로써 1995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던 해인사 장경판전과 함께 팔만대장경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세계적 유물로 자리 매김하게 됐다.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된 해인사 팔만대장경. 1251년에 조성된 목판본이다.

세계가 인정한 8만 1258장의 大.佛.事

# 고려대장경의 이야기

 ‘부처님 가피로 국난극복’결실…현존 경판은 ‘재조’

고려대장경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초조대장경과 교장(敎藏), 팔만대장경이라 불리는 재조대장경이 그것이다. 부처님 가피로 국난을 이겨내자는 온 국민의 원력을 모아 발간한 고려대장경은 8만 여장의 경판 수만큼 장구한 역사를 갖는다.

대장경이 처음 조성된 시기는 고려 현종 2년(1011) 때로 거란의 침입을 막기 위해 시작됐다. 소위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이라 불리는 이 경판은 선종 4년(1087)에 완성됐는데, 대략 6000권 정도의 분량이었다. 당시의 한역(漢譯)대장경으로서는 동양에서 가장 방대했다. 이렇게 탄생한 고려 최초의 대장경은 여주에 있던 흥황사 대장전(大藏殿)에 보관됐다. 이어 대각국사 의천스님은 초조대장경에 누락된 경전 3000여권을 송(宋).거란.일본 등에서 구해왔다. 그리고 선종 7년(1090) 흥황사에 교장도감(敎藏都監)을 설치하고 일명 속장경이라 불리는 교장을 완성했다. 하지만 초조대장경과 속장경은 고종 19년(1232) 몽고군의 침입으로 부인사에서 소실되고 만다.

현재 초조대장경은 목판본이 아닌 인쇄본 일부가 우리나라와 일본 등에 남아있고, 교장 역시 〈신편제종교장총록〉을 통해 목록이 전해진다. 그리고 고려인은 몽고의 침략으로 나라를 지키자는 원을 담아 또다시 대장경을 새기기 시작한다. 이것이 오늘날 해인사 판전에 보관돼 있는 경판들로 두 번째로 만든 재조대장경이다. 고종 23년(1236)부터 15년 뒤인 1251년에 대장경을 조성했다. 강화도에 보관된 이 대장경은 조선시대에 들어와 태조 7년(1398)에 서울 지천사(支天寺)로 옮겼다가 그 해 가을 곧바로 합천 해인사로 옮겨졌으며, 지금까지 전해진다.

# 팔만대장경판과 제경판에 대하여

전란 겪으며 240년 걸쳐 조성…출판인쇄술의 정수

몽고 침입 때 조성된 재조대장경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팔만대장경이다. 대장경판은 총 1천496종의 경전 6천568권을 8만1천258장의 목판으로 판각한 것이다. 8만4000의 부처님 법문을 8만 여장의 경판에 담고 있어 팔만대장경이라 불린다.

나라가 전쟁으로 피폐해진 시기 240년이란 긴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조성한 팔만대장경은 고려인들의 깊은 불심을 보여주는 한편, 고려시대 우리나라 출판인쇄술의 우수함을 보여주는 문화유산이다. 이들은 현재 국보 제36호로 지정돼 있으며, 해인사 판전의 수다라장과 법보전에 보관돼 있다.

팔만대장경과 함께 세계기록유산으로 제정된 제경판은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제외한 나머지 경판들이다. 이들은 주로 대장경 판전 사이에 있는 동.서 사간판전(寺刊板殿)에 보관돼 있다. 고려시대 사찰에서 새긴 것들로 목판 가운데 28종2725판은 국보 제206호로, 26종 110판은 보물 제734호로 지정돼 있다. 여기에는 〈금강경〉 〈화엄경〉 등의 경전과 신라.고려.중국의 고승이나 개인의 시문집 및 저술들이 포함돼 있다. 특히 시문집의 경우 역사적으로 희귀한 자료들이 대부분이다.

# 팔만대장경의 우수성

북송-거란 대장경 내용 알수 있는 유일한 ‘완전판’

팔만대장경은 현재까지 완전하게 전해지는 유일한 대장경이다. 북송과 거란에서도 각각 대장경을 조조했지만 겨우 10여권만 남은 상황에서 송나라 북송관판이나 거란의 대장경의 내용을 알 수 있는 자료는 오직 팔만대장경 뿐이다.

특히 팔만대장경은 사업을 주관하던 개태사 승통인 수기대사가 북송관판, 거란본, 초조대장경을 참고하여 내용의 오류를 바로잡아 가며 제작한 것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대진대 류부열 교수는 “특히 대장경 본문의 정확성은 후대의 어느 대장경보다 우수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 영인본에서 볼 수 있듯이 필치 또한 단정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흐트러짐 없이 일정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처럼 팔만대장경은 현존 대장경 중에서도 가장 오랜 역사와 내용의 완벽함을 인정받은 세계적인 문화재임에 틀림없다.

# 고려대장경의 영향

日서 저본삼아 축쇄장경 간행

세계에서 두 번째로 발간된 고려대장경은 북송의 〈개보장〉의 영향을 받아 조성된 것이다. 초조대장경은 물론 재조대장경 역시 〈개보장〉을 토대로 수정돼 판각됐다는 논문도 여러 차례 발표되기도 했다.

고려대장경은 다시 일본에 영향을 미친다. 일본은 우리 팔만대장경본을 저본(底本)으로 삼아 메이지(明治)연간에 축쇄장경을 간행했다. 또 타이쇼(大正)연간에도 팔만대장경본을 바탕으로 〈대정신수대장경〉을 펴내기도 했다. 어현경 기자

 
세계기록문화유산 등재된 팔만대장경-제경판
[불교신문 | 2007-06-16 00:26:49]
 

 

 지난 14일 합천 해인사에 봉안돼 있는 팔만대장경과 제경판의 세계기록문화유산 등재가 결정됐다.

직지심체요절에 이어 한국불교유물이 우리나라를 넘어 인류가 소중히 보존해야할 가치 있는 유산으로 인정받게 된 두 번째 사례다. 이로써 1995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던 해인사 장경판전과 함께 팔만대장경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세계적 유물로 자리 매김하게 됐다.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된 해인사 팔만대장경. 1251년에 조성된 목판본이다.

세계가 인정한 8만 1258장의 大.佛.事

# 고려대장경의 이야기

 ‘부처님 가피로 국난극복’결실…현존 경판은 ‘재조’

고려대장경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초조대장경과 교장(敎藏), 팔만대장경이라 불리는 재조대장경이 그것이다. 부처님 가피로 국난을 이겨내자는 온 국민의 원력을 모아 발간한 고려대장경은 8만 여장의 경판 수만큼 장구한 역사를 갖는다.

대장경이 처음 조성된 시기는 고려 현종 2년(1011) 때로 거란의 침입을 막기 위해 시작됐다. 소위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이라 불리는 이 경판은 선종 4년(1087)에 완성됐는데, 대략 6000권 정도의 분량이었다. 당시의 한역(漢譯)대장경으로서는 동양에서 가장 방대했다. 이렇게 탄생한 고려 최초의 대장경은 여주에 있던 흥황사 대장전(大藏殿)에 보관됐다. 이어 대각국사 의천스님은 초조대장경에 누락된 경전 3000여권을 송(宋).거란.일본 등에서 구해왔다. 그리고 선종 7년(1090) 흥황사에 교장도감(敎藏都監)을 설치하고 일명 속장경이라 불리는 교장을 완성했다. 하지만 초조대장경과 속장경은 고종 19년(1232) 몽고군의 침입으로 부인사에서 소실되고 만다.

현재 초조대장경은 목판본이 아닌 인쇄본 일부가 우리나라와 일본 등에 남아있고, 교장 역시 〈신편제종교장총록〉을 통해 목록이 전해진다. 그리고 고려인은 몽고의 침략으로 나라를 지키자는 원을 담아 또다시 대장경을 새기기 시작한다. 이것이 오늘날 해인사 판전에 보관돼 있는 경판들로 두 번째로 만든 재조대장경이다. 고종 23년(1236)부터 15년 뒤인 1251년에 대장경을 조성했다. 강화도에 보관된 이 대장경은 조선시대에 들어와 태조 7년(1398)에 서울 지천사(支天寺)로 옮겼다가 그 해 가을 곧바로 합천 해인사로 옮겨졌으며, 지금까지 전해진다.

# 팔만대장경판과 제경판에 대하여

전란 겪으며 240년 걸쳐 조성…출판인쇄술의 정수

몽고 침입 때 조성된 재조대장경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팔만대장경이다. 대장경판은 총 1천496종의 경전 6천568권을 8만1천258장의 목판으로 판각한 것이다. 8만4000의 부처님 법문을 8만 여장의 경판에 담고 있어 팔만대장경이라 불린다.

나라가 전쟁으로 피폐해진 시기 240년이란 긴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조성한 팔만대장경은 고려인들의 깊은 불심을 보여주는 한편, 고려시대 우리나라 출판인쇄술의 우수함을 보여주는 문화유산이다. 이들은 현재 국보 제36호로 지정돼 있으며, 해인사 판전의 수다라장과 법보전에 보관돼 있다.

팔만대장경과 함께 세계기록유산으로 제정된 제경판은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제외한 나머지 경판들이다. 이들은 주로 대장경 판전 사이에 있는 동.서 사간판전(寺刊板殿)에 보관돼 있다. 고려시대 사찰에서 새긴 것들로 목판 가운데 28종2725판은 국보 제206호로, 26종 110판은 보물 제734호로 지정돼 있다. 여기에는 〈금강경〉 〈화엄경〉 등의 경전과 신라.고려.중국의 고승이나 개인의 시문집 및 저술들이 포함돼 있다. 특히 시문집의 경우 역사적으로 희귀한 자료들이 대부분이다.

# 팔만대장경의 우수성

북송-거란 대장경 내용 알수 있는 유일한 ‘완전판’

팔만대장경은 현재까지 완전하게 전해지는 유일한 대장경이다. 북송과 거란에서도 각각 대장경을 조조했지만 겨우 10여권만 남은 상황에서 송나라 북송관판이나 거란의 대장경의 내용을 알 수 있는 자료는 오직 팔만대장경 뿐이다.

특히 팔만대장경은 사업을 주관하던 개태사 승통인 수기대사가 북송관판, 거란본, 초조대장경을 참고하여 내용의 오류를 바로잡아 가며 제작한 것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대진대 류부열 교수는 “특히 대장경 본문의 정확성은 후대의 어느 대장경보다 우수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 영인본에서 볼 수 있듯이 필치 또한 단정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흐트러짐 없이 일정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처럼 팔만대장경은 현존 대장경 중에서도 가장 오랜 역사와 내용의 완벽함을 인정받은 세계적인 문화재임에 틀림없다.

# 고려대장경의 영향

日서 저본삼아 축쇄장경 간행

세계에서 두 번째로 발간된 고려대장경은 북송의 〈개보장〉의 영향을 받아 조성된 것이다. 초조대장경은 물론 재조대장경 역시 〈개보장〉을 토대로 수정돼 판각됐다는 논문도 여러 차례 발표되기도 했다.

고려대장경은 다시 일본에 영향을 미친다. 일본은 우리 팔만대장경본을 저본(底本)으로 삼아 메이지(明治)연간에 축쇄장경을 간행했다. 또 타이쇼(大正)연간에도 팔만대장경본을 바탕으로 〈대정신수대장경〉을 펴내기도 했다. 어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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