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民 ―교토의 밤
게타 소리 푸념에 교토의 밤은 깊어가고
오색 나비떼가 춤추며 오가는 듯
나라를 지닌 백성이면 저리 행복한 것을
장성처럼 서서 넋 잃고 지켜본다
나라 없는 설움이 북받치는 밤이여
긴 목을 전선주에 처박고 홰울음을 터쳤다
나라 빼앗긴 지도 어언 이십여 년
조개껍질 밀리듯이 압천(鴨川)벌에 모인 동기들
판잣집 목로에 둘러 앉아 향수 서로 달랜다
설움도 즐거움도 서로 같이 나누고
하나 울면 따라 울고 웃으면 따라 웃고
술잔을 주고 받으며 목이 메는 아리랑.
―정훈(1919~1992)
삼월 앞이라 울분의 시편이 깊이 닿는다. 정지용·윤동주 시비(詩碑)가 있는 교토(도시샤대학). 1930년대 그곳 '전선주에' 목을 처박은 시인의 '홰울음'이 처연하다. '아리랑 民'이라 자처할 만큼 설움으로 버틴 식민지 조선의 청년들. 교토 '압천(鴨川)벌에' 조개껍질처럼 밀려들어 '판잣집 목로'에서 '목이 메는 아리랑'이나 부를 뿐. 그마저도 징집령에 뿔뿔이 흩어지거나 산화했지만…. 윤동주·송몽규 등의 순결한 죽음이 겹치는 '교토의 밤'을 다시 숙여 읽는다. 영화 '동주' 관객들도 그런 부응인가, 숙연해진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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