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륜산의 명물 구름다리를 건너는 등산객
해남 두륜산(頭輪山·703m) 중턱 진불암(眞佛庵)은 가을빛으로 화사하게 빛나고 있건만 스님과 보살들은 겨울맞이에 바빴다. 보살들은 대나무 평상에 걸터앉아 발간 땡감 껍질을 깎아내느라 칼 든 손을 바삐 움직이고, 스님은 향적당(香寂堂) 툇마루 한쪽 편에 마련한 망사 건조대 안에 감을 매다느라 조심스럽게 손을 놀렸다.
바람이 휙 불어왔다. 노란 잎으로 하늘을 가린 은행나무에선 잎이 우수수 떨어졌다. 그러자 아낙은 잰 걸음으로 은행나무 아래로 다가가 나뭇가지로 노란 잎 들쳐대며 은행을 주워댔다. 이렇게 가을이 깊어만 가는데 연못 속 금잉어는 겨울이 다가오는 게 싫은지 바람에 수면이 흔들릴 때마다 자꾸자꾸 연잎 밑으로 몸을 감춘다.
“이거 오늘도 틀린 것 같아-.”
올 들어 세 번째. 이른 봄과 초여름에는 매번 구름안개가 우리의 바람을 무참히 깨뜨리곤 했다. 이번에는 하늘이 우리의 마음을 알아주려는지 밤새 퍼붓던 비가 영산강을 건널 즈음 멈추고 영암을 가로지를 때는 먹구름이 옅어지더니 해남 땅에 들어서자 하늘이 터졌다. 그런데 장춘리(長春里) 숲길을 거쳐 진불암에 올라서는 사이 또다시 먹구름이 밀려와 한숨짓게 한다.
그래도 혹시 하는 기대를 하고 지저귀는 산새소리를 길동무 삼으며 단풍빛 화사한 산길로 접어든다. 진불암에서 낙엽 스치는 허릿길 따르다 일지암 갈림목을 지나면서 등산인들이 많아졌다. 가까이 광주·순천, 멀리 서울·부산 등지에서 왔다는 이들은 ‘차(茶)의 성지’ 일지암에서 차 향기를 듬뿍 맡고 왔는지 얼굴에 넉넉함이 배어난다.
만일암터를 지나면서 분위기는 더욱 무거워진다. 장벽같은 위세의 가련봉과 두륜봉을 덮은 먹구름이 더욱 무거워지고, 바람이 점점 강해지더니 이제 숲은 소리내어 울부짖는다. 산죽밭 빠져나가 만일재에 올라서는 순간에는 고개를 못 들 정도다. 그런 을씨년 분위기 속에서도 삼삼오오 둘러앉아 늦은 점심 먹는 등산인들은 즐겁기만 하다. 만일재 너머로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먹구름이 산은 누르고 있었으나, 호수와도 같은 해남과 완도 앞 바다는 어림도 없었다.
날씨는 더욱 고약해지지만 그렇다고 두륜산 명물을 안 보고 내려설 수는 없는 일. 거대한 절벽을 이룬 두륜봉을 마주보고 왼쪽 사면을 가로지르다 철계단길을 오른다. 이제 원초적인 자연의 소리, 바람만이 산의 정적을 깨뜨릴 뿐이다. 바람은 가을을 밀쳐내고 추운 겨울을 재촉하고 있었다. 그러나 구름다리를 빠져나가 두륜봉에 올라서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먹구름 사이로 파란하늘이 드러나고, 부챗살처럼 햇살이 내리쬐었다. 완연한 가을빛이었다.
● 코스 가이드 전국의 산들은 을씨년스런 늦가을로 접어들었지만 이번 주말 한반도 남단 해남땅의 두륜산을 찾으면 올 마지막 단풍을 기대해도 좋다. 도립공원 두륜산의 매력은 울창한 숲과 더불어 정상인 가련봉을 비롯해 두륜봉(630m), 고계봉(638m), 노승봉(685m) 등, U자형으로 이어지는 8개 봉우리를 오르는 산행의 묘미와 산봉에서 바라보는 남해 조망이 일품이라는 점. 국보 1점. 보물 3점 등의 문화재를 여럿 지닌 대흥사가 자리하고 있어 불자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 산이다. 산행 코스는 가련봉~두륜봉을 거치는 대흥사 원점회귀 코스와, 대흥사~만일암터~안부~두륜봉~위봉~쇠노재 종주 코스, 그리고 6봉을 잇는 장춘리~오도치~혈망봉~연화봉~두륜봉~가련봉~노승봉~고계봉~장춘리 코스 등이 있으나, 초행자에게는 장춘리 숲길을 따라 대흥사까지 다가간 다음 대표적인 암자와 두륜산 명물 구름다리를 잇는 일지암~북미륵암~오심재~능허대~가련봉~두륜봉~진불암~대흥사 코스를 권할만하다. 약 10km로 4~5시간 걸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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