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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고가면 더 좋다 ◑/산

안동 예던 길

by sang-a 2014. 12. 13.

강물 굽이치는 석벽길… 선비들 詩 한수 절로 읊은 仙境
경북 안동, 가송리 예 던길
▲ 벽력암 전망대에 올라서 내려다본 가송리 일대의 풍경. 청량산 자락을 굽이굽이 돌아온 강물이 마치 품 안으로 흘러드는 듯하다. 산자락이 흘러 내려온 강 오른편의 짙은 숲이 워낙 울창해 도무지 길이 있을 것 같지 않지만, 그 숲 깊이 ‘가송리 예던길’이 나있다. 강 왼쪽으로 보이는 한옥이 농암종택이다.
▲ ‘가송리 예던길’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벽력암 전망대. 강물이 굽이쳐 흐르는 깎아지른 단애의 정상에 나무덱으로 지은 전망대가 놓여 있다.
# 긍구당 누마루에서 ‘그 길이 있음’을 알게 되다

그 길은 외지인의 눈에는 좀처럼 닿지 않는 곳에 숨겨져 있었다. ‘아름다울 가(佳)’에 ‘소나무 송(松)’. 풀어 보자면 ‘아름다운 소나무가 있는 마을’이다. 그 이름만큼 서정적인 곳. 경북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다. 가송리는 낙동강 상류와 청량산 자락이 만나서 산촌의 싱그러움과 강촌의 아늑한 풍경을 두루 갖추고 있는 마을이다. 애초에 그곳을 찾았던 것은 강변의 거대한 녹음 속에 찍힌 하나의 점(點)처럼 고요하게 앉아 있는 정자 고산정과 그윽한 풍모의 한옥 고택 농암종택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강 건너 마을의 한쪽 끝에서 고요한 강물에 발을 담그듯 서 있는 고산정은 고결한 선비의 풍모, 그것에 다름아니다. 짙은 녹음 속에서 저 홀로 찍힌 하나의 점처럼 들어선 정자는 강 이쪽 편에서 바라다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저릿’해질 정도로 아름답다. 집이 어찌 저리도 아름다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그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는 것은 정자가 갖추고 있는 건축미 따위가 아니다. 그 진면목은 신록과 강물과 집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데서 나온다. 먼저 자연 속에 들어앉은 정자의 앉음새에 감탄하고 나면, 그 다음은 ‘딱’ 그곳에 정자를 들인 이의 안목에 대한 감탄으로 자연스레 이어진다.

고산정의 물길 아래쪽에는 농암종택이 있다. 빼어난 풍모를 갖추고 있는 데다, 고택의 방을 관광객들에게 잠자리로 내주면서 이름을 알린 농암종택은 그러나 애초 섰던 자리는 그곳이 아니었다. 본래의 종택은 강 하류의 도산서원에서도 남쪽으로 2㎞를 더 가야 하는 분천동에 있었다. 일명 ‘분강촌’이라 불렸다는 분천동은 수려하기 이를 데 없는 풍광을 품고 있었다는데, 1975년 안동댐 건설로 수몰되고 말았다. 그래서 후손들이 고택을 뜯어내서 옮겨온 곳이 이곳 가송리다. 집주인이었던 농암 이현보가 ‘어부가’ 등을 남겨 조선 중기 강호문학(江湖文學)의 창도자로 일컬어지는 만큼 고택을 이곳 가송리 강변으로 옮겨와 새 집터로 삼은 것은 그야말로 탁월한 선택이었지 싶다.

그 길이 있음을 짐작하게 된 것은, 농암종택의 마당에서였다. 종택의 별당인 긍구당의 누마루에 앉아 옥빛의 강과 그 건너편에 치솟은 석벽인 벽력암을 올려다보았을 때 까마득한 암봉의 정상에 못 보던 나무덱 전망대가 놓여 있었다. 숲이 우거져 길이 있으리라고는 한번도 생각지 못했던 강 건너편의 어디쯤엔가 길이 있는 게 분명했다. 그 길을 찾아 나서게 된 연유가 이랬다.



# 끊긴 ‘예던길’과 새로 놓인 ‘예던길’ 이야기

강 건너편 그 길의 들머리를 왜 못 보았을까. 소두뜰을 지나 강변을 따라가다가 강물의 흐름과 강변에 늘어선 미루나무의 녹음에 시선을 빼앗긴 탓에 그 길을 놓치고 말았다. 소두뜰이며 가사마을 인근의 빼어난 산수 풍경은 그만큼 좀처럼 한눈을 팔 수 없게 만든다.

길은 농암종택 못미처 자그마한 시멘트 다리로 강을 건너가면 당도하는 가사마을에서 시작된다. 청량산 줄기가 마을을 에워싸고 마을 가운데로는 낙동강이 굽이쳐 흐르는 곳. 물줄기가 제법 깊은 담(潭)을 만들면서 굽이치는 가사마을의 풍경은 예부터 ‘도산구곡’의 제8곡 ‘가송협(佳松峽)’으로 일컬어져 온 곳이다.

그 길의 시작 지점에 도산면사무소에서 설치한 안내판이 서 있고, 거기에 길 이름이 붙어 있었다. ‘가송리 예던길’. ‘예던길’은 퇴계가 도산서원과 청량산을 오가면서 걸었다는 오솔길로, 본래 ‘예던길’은 가사마을의 강 건너편에 따로 있다. 그러나 예던길은 아쉽게도 중간쯤에서 허리가 뚝 끊기고 말았다. 강변길을 끼고 있는 땅의 임자가 경작을 이유로 ‘제방을 쌓아 달라’고 요구하며 외부인들의 출입을 막은 것이다. 갈등이 해를 묵으면서 ‘남의 땅’에 안내판을 세우고 풀을 벴던 공무원들이 급기야 경찰에 불려가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그 길을 걷지 못하는 게 못내 아쉬웠던 사람들은 용기를 내서 내려서기도 했지만, 그 대가로 땅주인과 드잡이도 감수해야 했다. 길이 닫히자 지방자치단체는 궁여지책으로 강변을 끼고 있는 건지산의 삽재를 넘어 학소대로 돌아가는 산길을 새로 놓았다. 그러나 어디 그 산길이 강변길만 할 것인가. 결국 예던길은 있으되, 절반쯤의 구간은 걸을 수 없는 길이 돼버린 것이었다.

이런 차에 강 건너편의 가사마을에 ‘가송리 예던길’이라는 새 길이 놓였다. 아니 ‘새 길’이라기보다는 옛길을 다시 복원해 냈다는 게 더 옳겠다. 산자락의 가재미골이며 장구목을 넘어가는 그 길은 안동댐이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가송리 사람들이 산 너머 예안장을 다니던 길이었다. 아이들도 이 산을 넘어서 예안의 초등학교를 다녔다. 그 길이 잊어진 것은 댐이 들어서면서 물살이 거칠어져 길의 들머리를 삭둑 잘라냈기 때문이다. 끊긴 길은 더 이상 길이 아니었으니 흐려지다가 사라지고 말았다. 그 길을 복원한 것은 지역공동체 일자리사업에 나선 마을 주민들이었다. 지난해 가을에 시작해 겨우내 기억을 더듬어 흐려진 길을 찾아내고 잘린 길을 이었다. 그리고 지난 4월쯤에야 길이 정비됐다.



#‘경치가 아주 죽여 준다’는 낙서로 짐작되는 벽력암 선경

길의 들머리는 가파른 석벽의 벼랑길이다. 물살에 깎여 나가 드러난 바위에 아슬아슬 길을 이었다. 자칫하면 물로 떨어지는 직벽이라 밧줄을 이어 난간으로 삼았다. 석벽 사이로 작긴 하지만 제법 물줄기가 힘찬 폭포가 흐르는 구간을 지나기도 한다. 길을 놓기 어려운 곳에는 짧은 나무덱을 놓았다. 강물에 바짝 붙어가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곧 발아래가 시퍼런 월명담이다. 석벽을 만나 굽이친 물길이 만들어낸 깊은 소다. 옛 읍지에는 ‘이 소에 용이 살고 있어 이곳에서 기우제를 올리면 영험하다’고 적고 있다. 고요한 못에 솟은 석벽에는 ‘도우단(禱雨壇)’이 있어 고을 수령들이 돼지를 잡아 기우제를 지냈다는데, 가사마을 주민들은 1960년까지도 그 전통이 이어져 왔다고 입을 모았다. 퇴계가 이런 풍광을 보고 시 한수 읊지 않았을 리 없다. “그윽하고 맑은 소(沼), 빼어나고 푸르니 / 그 속 깊은 곳 목석신령 간직했네 / 열흘 동안 내린 비 이제야 개니 / 용이여 구슬을 안고 아늑한 달 속으로 돌아가라.”

월명담을 지나면 곧 갈림길이 나온다. 경사면을 차고 오르는 왼쪽 길은 가재미골을 넘어 예던길이 시작되는 단천리까지 이어지고, 부드럽게 이어지는 오른쪽 길은 줄곧 강변을 따라간다. 하지만 가송리 예던길의 백미인 벽력암을 빼놓을 수는 없는 일. 갈 때는 경사면의 길을 택해 벽력암까지 가서 강변길을 따라 되돌아오는 편이 더 낫다. 이렇게 행로를 잡아 제자리로 되돌아오는 데는 2시간30분쯤 걸린다. 지도만 놓고 보자면 강변길로 오고 가는 쪽을 택하기 쉽겠지만, 보기보다 강변길의 오르내림이 만만치 않아 내림길에서 이 길을 택하는 편이 낫겠다.

가송리 예던길의 최고의 풍광이라면 단연 벽력암 정상의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겠다. 유장한 강물이 품 안으로 흘러 들어오는 자리에서 굽어보는 강변의 정취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누군가 덱의 전망대에 갈겨쓴 낙서 한 줄. ‘경치가 아주! 그냥 죽여 주내(네)요!” 그 낙서의 느낌표로 짐작할 수 있을까. 찬찬히 고개를 둘러보면 강 건너편 농암종택의 크지만 정갈한 풍모가 한눈에 들어온다. 굽어지는 물줄기와 숲에 가려졌지만 한때 먹황새가 살았다던 하류쪽의 학소대 끄트머리가 살짝 보이기도 한다. 학소대에는 한 쌍의 먹황새가 깃들였는데 1969년 사냥꾼에 의해 수컷이 죽자 혼자 남은 암컷이 그 자리에서 3년을 수절하다가 떠났다는 이야기가 남아 있다. 이를 증거하듯 지금도 절벽 아래는 ‘천연기념물 제72호 종류번식지’란 표지석이 남아 있다.

경북 안동이라면 사람들은 무엇을 먼저 떠올릴까. 하회마을과 도산서원. 대부분 이 두 가지를 들고서는 주춤거릴 게 틀림없다. 하지만 두 곳보다 더 빼어난 곳들이 안동의 도처에 있다. 오히려 이 두 곳의 명성 탓에 가려진 곳들이 적지 않다. 그 중의 한 곳이 바로 청량산 자락과 낙동강 상류가 만나는 여기 가송리 일대다. 단천리에서 가송리까지 진짜 ‘예던길’을 걷든, 강 건너편의 ‘가송리 예던길’을 걷든, 그도 아니면 가송리의 강변길을 드라이브하며 농암종택과 고산정을 둘러보든, 어떤 것을 택해도 좋다. 퇴계가 걷던 소박한 강변의 오솔길을 걷게 된다면, 필시 속된 탐욕에 한눈 팔지 않고, 평생 인간의 도리를 궁구했던 유학자들의 정신이 이렇듯 빼어난 자연과 풍류 속에서 완성됐음을 짐작하게 되리라.

안동 = 글·사진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

가는 길
중앙고속도로 서안동나들목으로 나가서 34번 국도를 타고 안동 방면으로 향한다. 안동시내에서 천리교 건너 좌회전해 35번 국도로 갈아타고 도산서원 삼거리를 지나 청량산 삼거리 가기 전, 길이 크게 왼쪽으로 굽는 구간에서 오른편 샛길로 들면 고산정과 농암종택으로 향하는 길이다. 포장공사가 한창인 도로를 따라 농암종택 방면으로 향하다 보면 고산정을 지나 왼편으로 시멘트 다리가 나온다. 다리를 건너면 ‘가송리 예던길’이 시작되는 가사마을이다.

먹을 것, 묵을 곳
안동에는 고택체험을 할 수 있는 운치있는 민박들이 곳곳에 있다. 하회마을의 ‘락고재’(054-857-3410)가 가장 추천할 만한 숙소다. 전통 고택이 아니라 새로 지은 초가집에 들인 전통 민박으로 운치가 빼어날뿐더러 외관과 다르게 편의시설 등이 잘 갖춰져 있어 편리하기도 하다. 편백나무로 짠 욕조가 있는 쾌적한 욕실을 갖추고 있고, 각 방에서 무선인터넷도 가능할 정도다. 멍석을 바닥에 깐 공용 찜질방도 두고 있다. 하회마을의 전통 한옥 북촌댁(010-2228-1786)도 그윽한 맛이 일품인 숙소다. 예던길을 목적지로 삼았다면 고택 민박으로 이름나 있는 가송리의 농암종택(054-843-1202)을 택하는 편이 좋겠다. 고택 민박들은 대부분 예약하면 아침식사도 차려 낸다.

안동의 맛집으로는 헛제삿밥을 내는 ‘까치구멍집’(054-855-1056)이 유명하다. 도산면사무소 부근에는 ‘몽실식당’(054-856-4188)의 가정식백반이 가장 추천할 만하다. 청량산 입구쪽에 산채정식이나 민물매운탕, 손두부 등을 내는 음식점들이 모여 있다. 남문동 구시장의 찜닭골목에서 내는 칼칼한 안동찜닭도 추천할 만한 메뉴다. ‘유진찜닭’(054-854-6019) 등이 유명하다.

하회마을 인근의 ‘황소곳간’(054-842-1002)은 질 좋은 안동산 한우를 내놓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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