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드러진 꽃길 사이로 꽃비가 내리더니 어느새 파도 소리가 귓가에 철썩인다. 남녘의 봄빛과 바람에 실린 솔 향, 드넓게 펼쳐진 바다를 모두 담았다. 파도가 전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갈매기와 함께하는 길, 부산 갈맷길을 걷다.
푸른 소나무가 안내하는 다정한 숲길
숲과 바다, 강과 도심을 안은 갈맷길은 부산의 안과 밖을 촘촘히 싸고돈다. 9개 코스에 걸쳐 이어지는 총 263.8km의 여정. 무려 7백 리에 이르는 긴 길이지만 아름다운 절경을 만끽하며 부산의 숨겨진 얼굴들을 만나다 보면 어느 한 곳 지루할 틈이 없다. 호젓하고 고요한 숲길부터 부서지는 포말과 시원한 파도 소리를 벗 삼는 바닷길, 휘황찬란한 신도시의 활기찬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도심길까지 따로 또 같이 즐긴다. 9개의 코스는 다시 크고 작은 20개 구간으로 나뉜다. 어느 길을 걸을까 고민하다 문탠로드에서 오륙도 선착장까지 이어지는 2코스를 걸어보기로 한다. 봄이 되면 만발한 벚꽃들로 꽃 대궐을 이루는 달맞이고개와 해운대 해변길, 파도치는 절벽이 절경인 이기대길 등 다채로운 자연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는 코스다.
무엇보다 코스가 험하지 않아 남녀노소 쉽게 걸을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갈맷길 1코스의 끄트머리 구간이자 2코스의 시작점인 문탠로드는 해운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달맞이고개에서 해안 절경과 우거진 숲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산책 코스다. 아름다운 월출을 감상할 수 있어 관광객들뿐 아니라 부산 시민들에게도 밤 산책길로 사랑받는 곳. 문탠로드 초입에 들어서자 지저귀는 새소리가 방문객을 반긴다. 푸른 소나무 사이로 진달래와 개나리가 고개를 내밀고 상쾌한 바닷바람이 솔잎을 스치고 불어온다. 달빛 내리쬐는 야경도 아름답지만 낮에 걸어도 손색이 없다. 소나무가 안내하는 작은 오솔길을 따라 한 바퀴를 돌고 나니 맑고 싱싱한 솔 내음이 온몸에 가득하다.
바다와 산이 만나는 절경, 바닷길기암절벽과 울창한 숲이 따르는 이기대길은 갈맷길 중에서도 가장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코스다. 용호동 해안을 따라 오륙도 선착장까지 이어지는데, 곳곳에 구름다리와 해녀막사, 공룡발자국, 농바위 등 보석 같은 볼거리와 이야기들이 널려 있다. 이기대는 본래 군사작전 지역으로 출입이 통제되던 곳이었는데 1993년 시민들에게 개방되며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덕분에 희귀한 식물과 곤충이 서식하는 등 자연 보존 상태가 좋다. '이기대(二妓臺)'라는 이름의 유래는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임진왜란 때 수영성을 함락한 왜군이 이곳의 절경에 취해 잔치를 벌이고 있을 때 두 명의 기생이 술에 취한 왜장을 끌어안고 바다에 뛰어든 것에서 유래됐다. 길 중간에 만난 해녀막사는 바다를 향해 고개를 내민 거북 모양을 닮았다. 지금도 해녀들이 어구를 챙기고 잠수복을 갈아입는 곳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그날 잡은 해물들로 좌판을 벌여 싱싱한 바다의 맛을 느낄 수 있다. 6천5백만 년 전 살았던 대형
초식 공룡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공룡발자국, 마치 농(가구)을 올려놓은 모양이라 해 이름 붙은 농바위도 만나볼 수 있다. 귓가를 울리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기기묘묘한 암반 위로 발을 내딛다 보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자연의 일부가 된다.
눈부신 봄빛 가득, 아름다운 꽃길
문탠로드를 나와 해운대로 향하는 길. 만발한 벚나무가 도열한 달맞이고개는 온통 분홍빛이다. 흐드러진 벚나무를 지붕 삼아 꽃비 내리는 길을 걷는 기분은 그야말로 '호사롭다'라는 말이 딱이다. 봄빛 완연한 계절을 만끽하며 발길에 몸을 맡기다 보면 오랫동안 품어왔던 걱정과 시름은 떠올릴 겨를이 없다. 아름다운 꽃길을 뒤로하고 발길을 옮기니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기찻길과 만난다. 바다와 언덕 사이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고즈넉한 풍경은 여러 드라마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멀리 수평선이 내려다보이는 운치 있는 길은 해운대 속 작은 어촌마을 미포를 지나 해변으로 이어진다. 드디어 펼쳐진 눈앞의 바다, 해운대다. '쏴~' 하며 밀려드는 파도에 몇 해 전 여름의 기억이 소환되고 여행자의 발걸음은 한결 느슨해진다. 아직 바닷물이 차가울 텐데도 따사로운 봄볕에 취해 과감해진 청춘들이 눈에 띈다. 아장아장 작은 발자국을 남기는 아이들과 봄 바다를 즐기는 연인들, 해변 산책을 나온 시민들까지 모두 해운대 갈맷길의 다채로운 표정들이다. 해운대를 지나 동백섬에 다다르면 길은 또 다른 표정으로 얼굴을 바꾼다. 이제 울창한 소나무와 탐스러운 동백꽃의 아름다움에 취할 차례다. 화려함과 모던함을 자랑하는 해운대 신시가지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갈맷길 2코스 총 18.3km, 소요 시간 약 8시간달맞이고개 문탠로드↔해운대↔동백섬↔민락교↔광안리해수욕장↔동생말↔이기대 전망대↔오륙도 선착장
Tip
오륙도선착장에서 발길을 돌리기 아쉽다면 부산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운영하는 '오륙도상륙작전' 프로그램을 이용해보자. 숙박객들을 위한 체험 프로그램 전담 팀인 '페이스' 직원이 이기대길을 함께 걸으며 자연 동굴과 해녀막사, 공룡발자국, 이기대 등에 얽힌 숨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또 멀리서 눈으로만 보던 오륙도에 직접 배를 타고 들어가 6개 섬을 하나하나 만나볼 수 있다. 특히 시원한 해풍을 맞으며 마지막 등대섬까지 둘러보고 바다 한가운데에서 부산 영도를 바라보는 경험은 잊지 못할 색다른 추억을 선사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오후 2시에 출발하며 배낭과 간단한 식음료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