木馬와 淑女
한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木馬를 타고 떠난 淑女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木馬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傷心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小女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愛憎의 그림자를 버릴 때
木馬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오고 가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女流作家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등대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느 처량한 木馬,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靑春을 찾는 뱀과 같이
눈을 뜩 한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人生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雜誌의 표지처럼 通俗(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木馬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서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 ======= 傷心 ..상심 愛憎...애증 雜誌...잡지 通俗...통속
*박인환(1926~1956) : 김경린, 김수영 등과 함께 『새로운 都市와 市民들의 合昌』 발간 (1949)
작품: 1950년대 한국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박인환은, 이 시에서 서구적이고 도시적인 모더니즘 특유의
감수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이 시는 전후의 절망과 허무를 도시적 감성으로 빚어낸 작품으로,
떠나가는 모든 것에 대한 애상적 정서가 담겨 있다.
이 시는 연 구분이 없지만 내용상으로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행에서 11행까지의 첫 부분은 떠나 버린 '목마'란 현실이 폐허와 절망으로 얼룩지기 이전에나
존재할 수 있었던, 과거의 세계를 대변하는 하나의 표상이다. 그런데 그 목마는 '방울소리'의
여운만을 남겨둔 채 떠나 버리고 없다. 버지니아 울프는「등대」라는 소설을 쓴 영국의 여류 소설가로
전후의 허무감에 시달리다 템즈 강에 투신 자살한 인물인데, 서정적 자아의 허무적이고 염세적인 심리를
나타내기 위해 동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첫 부분에서는 모든 의미있는 존재들이 떠나고 부서져
버렸다고 느끼는 현실에 대한 서정적 자아의 비관적 인식을 표현하고 있다.
12행에서 25행까지의 두 번째 부분은 상실의 현실을 체념적으로 수용하는 서정적 자아의 애상이
드러나 있다. 이 부분의 '-해야한다'라는 당위적 서술어는 결단이나 극복의 의지와는 먼, 어쩔 수 없이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체념의 어조라고 보는 것이 좋겠다.
25행에서 32행의 마지막 부분은 아프이 절망적 인식에 대한 자기 내부의 의문이 나타나 있다.
인생이란 어차피 별 의미도 없이 늘 바뀌는 '잡지의 표지'와도 같은 것인데, 무엇 때문에 두려워 하고
한스러워하느냐고 스스로에게 반문해 보는 것이다. 이 마지막 부분은 언뜻 보면 앞의 애상적 정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긍정적 깨달음같지만 곰곰히 따져 보면 그것이 오히려 더 허무적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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