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접지몽胡蝶之梦 "
인간이 나비인가, 나비가 인간인가. 인간 존재에 관한 특별한 사유인 인간과 나비의 문제는 은유적이면서도 상징적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글이다. 이것이 바로 호접지몽(胡蝶之夢)이라는 우화인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느 날 장주가 꿈속에서 나비가 되었다 /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가 되어 / 즐겁고 유쾌했지만 / 자기가 장주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 그러다가 문득 잠에서 깨어나 보니 / 누워 있는 자신은 분명히 장주였다 / 그가 꿈에서 나비가 된 것인지 / 꿈속의 나비가 그가 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 장주와 나비는 / 틀림없이 다른 존재이다 / 이를 일컬어 물(物)이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이처럼 현실과 꿈이 분별되지 않으며 나비와 자기의 경계가 없어지고, 합일되는 지경을 말하는 것이 바로 호접지몽 우화다. 호접지몽에서는 장자(莊子) 자신이 꿈에서 나비가 된 것인지, 아니면 나비가 꿈에서 자기가 되어 있는 것인지, 어느 쪽이라고 말할 수 없다. 한마디로 변화하는 세상에서 모든 것은 일시적인 것이기에 ‘세상과 나의 구별은 무의미하다’라는 뜻이다. 장자는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무한광대한 세상을 알고자 하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무의미하므로 그저 흐르는 물이나 바람처럼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 절대경지에 이르면 꿈과 현실, 삶과 죽음, 어둠과 밝음, 유와 무, 기쁨과 슬픔도 차이가 없다. 물아일체(物我一體), 즉 상대인 물과 주체인 내가 하나로 합일하는 경지가 바로 호접지몽이다. 인생을 바람과 같이 소요(逍遙)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도가(道家)에서는 사람들에게 한바탕의 너털웃음처럼 살 것을 권고한다. 인생이 일장춘몽일 뿐이라면 욕망이나 의지 또한 꿈속의 허망한 것이다. 또한 한 바탕의 꿈속에서 무엇을 욕망하거나 성취한다고 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목표다. 따라서 그 인간이 허망하고 인생이 허무한 것을 인정하고 깨우칠 때 진정한 자유인이 된다는 의미의 이 고사는 철학적인 글이지만 한 편의 시로서도 예술적 가치가 있다. 호접지몽은 [장자]의 제물편에 나온다. 장주의 본명은 주(周 BC 365 - 290)로 자유분방하면서 막힘이 없는 현자였다. 그는 시비 선악 진위 미추 빈부 귀천을 초월하여 자연 그대로 살아가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제창했다. 인생의 덧없음을 표현한 호접지몽은 무위자연과 함께 오랫동안 예술의 주제였다. 이 노장사상(老莊思想)과 다른 철학을 직접 비교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지만 현대 포스트모더니즘의 탈중심, 탈경계, 탈영토 등과 유사한 면이 없지 않다. 사상과 감정이 시공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편재성(遍在性)와 막힘과 닫힘이 없는 유연성에서 두 사상은 유사하다. 그런데 허무주의로 보일 수 있는 이런 관점에 서게 되면, 인간사회의 법이나 제도는 물론이고 윤리나 도덕 또는 욕망이나 욕심이 모두 의미가 없다. 발전이나 진화 또한 의미가 없다. 따라서 이러한 사유는 특별한 사람들의 특별한 생각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모든 체제와 제도를 부정하는 한편 허무적이고 냉소적인 이런 태도는 무정부주의적이기 때문에 현실세계보다는 이상과 낭만적으로 이해되는 경향이 있다. (충북문화예술연구소장 / 충북대교수 김승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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