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시작하는 곳
- 정현종(1939 ~ )
하루를 공친다
한 여자 때문에.
하루를 공친다
술 때문에.
(마음이여 몸이여 무거운 건 얼마나 나쁜가)
정신이라는 과일이 있다.
몸이라는 과일이 있다.
그 둘은 서로가 서로에게
두엄이고 햇빛이고
바람이거니와
바람 없는 날은
자기의 무거움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
대지여
여자는 바람인가
술은 햇빛인가
그러나 언제나
마음은 하늘이다
바람이 시작하는 그곳이여.
바람이 시작하는 곳은 어디인가. 하늘인가 들판인가. 마음인가. 이런 질문으로 나날의 양식을 삼고, 그 대답의 궁구로 나날의 잠에 드는 사람을 시인이라 부르자 하는 그런 약속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런 약속 몰라도, 그때 A의 거짓말, 그런 따위는 대체 어디서 오는가를 묻는 것으로 나날의 양식을 삼는 이보다야 시의 나라 신민임을 절로 알 수 있다. 무거운 건 나쁘다고, 바람 없는 날은 대지도 자기의 무거움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 거라고, 바람이 시작하는 곳 바람의 눈을 그리며 형체 없는 바람을 감각하는 마음. 수년 마음에 맺혀 알아보고 싶은 일, 지지한 이러저러한 의문투성이 일 지우고 ‘바람이 시작하는 곳은 어디인가’ 이런 오롯한 물음으로 몸 채우고 싶은 오늘이다. <이진명·시인>
'◐ 문학 & 예술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네의 포플러나무 (0) | 2011.09.04 |
---|---|
조그만 사랑 노래 / 황동규 (0) | 2011.08.29 |
반성 / 김영승 (0) | 2011.08.27 |
인생은 나에게 술한잔 사주지 않았다 / 정호승 (0) | 2011.08.26 |
사설시조辭說時調를 찾아서 /김문억 (0) | 2011.08.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