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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 산책로 ◑

창덕궁 후원에서 진정 체감해야 할 역사의숨결은?

by sang-a 2011. 4. 13.

창덕궁 후원에서 진정 체감해야 할 역사의 숨결은?

[상식의 해부 12]    빼앗긴 화재의 귀환에 그저 박수만 칠 수 없는 까닭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함대가 약탈해간 외규장각 도서가 145년 만에 우리나라로 돌아오게 됐다. 그간 프랑스 국립도서관보관돼 왔던 외규장각 의궤는 4월 14일부터 5월 27일까지 4차례에 걸쳐 297권 전체가 반환되며 이후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이관될 예정이라고 한다. 외규장각 문서가 우여곡절 끝에 우리 품으로 돌아오게 된 것은 분명 축하할 만한 경사다. 그런데 이 소식을 들으면서 나는 한편으로는 빼앗긴 문화재의 환수와 함께 우리가 이미 갖고 있는 문화재를 제대로 보존하는 것이란 어떤 것일까에 대한 아쉬움을 새삼 들게 한다.

 

 

 

이번에 반환되는 외규장각의 본산인 규장각은 창덕궁 후원에 있다. 이 건물은 정조 임금이 세운 정조 통치의 중심 공간으로 부용지 연못을 내려다보는 곳에 있다. 나는 최근 창덕궁 후원 안에 들어갈 기회가 있었는데 과연 조선 궁궐의 대표적인 휴식 공간답게 자연과 인공이 조화를 이룬 정원 미학의 걸작이었다. 그리고 내가 또 본 것은 삼엄한 문화재 관리 시스템이었다. 출입도 엄격하게 통제하고, 안내자의 가이드 없이는 혼자 돌아다니는 것도 여의치 않을 정도로 철저히 관리하고 있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답게 문화재 보존을 위한 최선의 노력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이 같은 엄격한 관리에 못잖게 문화재를 과연 살아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있는지에 대한 평소의 의문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고궁은 왕과 그 일가가 살던 곳이지만 그 주인은 결코 왕이 아니다. 그곳은 나라의 공유 자산이며 공공재다. 정도전이 경복궁을 지을 때의 구상이 그랬고, 전각 하나하나의 이름에 담긴 뜻이 그러했다. 궁궐은 그러므로 전각의 건축 기술과 미학 이상의 공간이며, 역사의 한 현장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궁궐을 돌아볼 때 대체로 보게 되는 것은 근위병의 교대식 같은 몇몇 볼거리 정도일 뿐이다. 그 같은 몇몇 이벤트의 구경거리에 의해 궁궐이 갖고 있는 많은 의미와 상징, 거기에서 오늘의 후손들이 느끼고 오면 좋을 과거와의 대화는 매우 형해화돼 버리고 있다.

창덕궁 후원이라면 가령 두 개의 대조적인 공간에서 역사의 교훈을 새길만한 곳이다. 먼저 규장각과 규장각으로 올라가는 어수문은 1776년 스물다섯의 나이에 왕위에 오른 정조의 통치철학을 보여주는 곳이다. 이곳에서 정조와 정약용, 박제가, 유득공 등 선비들은 봉건적인 주종 관계를 넘어선 학문적 동료로서 조선말의 일대 부흥을 이뤄냈었다. 그러나 규장각으로 올라가는 어수문은 굳게 닫혀 있을 뿐이었다. 관람객들은 그곳에서 닫힌 출입문 안의 세계문화유산을 볼 수 있을 뿐, 정조와 그 신하들이 만들어낸 학문과 애민의 공동체의 자취를 느낄 수 없었다.

 

 

 
창덕궁 옥류암@김유림의 여행편지

이와 대조적인 곳이 옥류천이라는 곳이다. 이곳은 임금들이 술잔을 띄워놓고 음주 풍월을 읊던 놀이 공간이다. 이를 만든 임금은 인조인데, 조성한 해를 보니 1636년이다. 바로 병자호란으로 남한산성과 삼전도에서의 치욕을 당한 해다. 판소리꾼 임진택 씨가 최근 새로운 창작 판소리 <남한산성>에서 전하듯 우리 역사의 비통한 장면이 연출됐던 그 무렵에 인조는 술잔을 기울이며 음풍농월에 빠졌던 것이다.

“성에 남은 신하들은 가슴을 치고 통곡하고/백성들은 목놓아 우는데…임금이 말에서 내려 비틀비틀 단 아래로 걸어가니...조선 임금이 무릎을 꿇고 청나라 황제에게 항복을 하는데…또다시 세 번 머리조아리니/ 삼배 구고두례라”

 

그러나 이곳은 멋진 경관으로만 설명될 뿐, 그 이면의 반면교사에 대한 어떤 설명도 들을 수 없었다. 관람객들은 이곳에서 무엇을 얻어서 돌아갔을까.

창덕궁 후원은 정원미학의 걸작을 넘어서 조선 왕조의 대비되는 한 명암, 인조와 같은 못난 임금이 아닌 정조와 같은 현명한 군주가 더 많았어야 했다는 것의 생생한 실례, 통치자의 자격이 없는 권력자로 인해 역사가 얼마나 뒤틀릴 수 있는지에 대한 뼈저린 교훈을 체험할 수 있는, 아니 그래야 하는 곳이다. 그것이 세계문화유산으로서 신주단지 모시듯 ‘관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화재의 올바른 계승일 것이며, 유물에 쌓인 먼지를 진정 털어내는 일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설령 그것이 우리 곁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의 문화재를 프랑스보다 더욱 먼 곳에 유배보낸 것이나 다를 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