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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 & 예술 ◑

용산에서 / 오규원

by sang-a 2012. 2. 12.

내달 5주기… 존재 그 자체를 노래한 시인 추모 낭독회

"예술은 중도라든지 타협이라든지 모범이라든지 하는 것에 있지 않고 극단에 있습니다. 대중도 없고 환호도 없고 독자도 없는 곳으로 가십시오. 그곳에 자리 잡으면 당신의 독자가 새로 창조될 것입니다."

한국시단에서 언어 탐구의 거목이었던 오규원 시인(1941~2007)이 다음 달 2일 5주기를 맞는다. 시집 '사랑의 기교' '토마토는 붉다 아니 달콤하다' 등을 통해 시적 언어의 투명성을 극단으로 밀고 나가면서 독특한 시 세계를 일궜던 고인은 "존재의 현상 그 자체를 언어화한다"는 명제 아래 '날(生)이미지 시'를 제창한 것으로 이름났다.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사물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자 한다는 취지였다. 1965년 현대문학에 '겨울 나그네'가 추천되고 1968년 '몇 개의 현상'이 추천 완료됨으로써 등단한 그는 '분명한 사건' '새와 나무와 새똥 그리고 돌멩이' 등의 시집을 내고 현대문학상, 이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다음달 2일은 시인 오규원의 5주기. 시인뿐만 아니라 소설가와 평론가까지 30여명이 모여 그의 작품을 낭독한다. 사진은 1주기 추모행사 모습. /최순호 기자 choish@chosun.com

그는 서울예대 문창과 교수 20년 (1982~2002) 동안 수많은 제자 시인을 길러낸 것으로도 이름난 스승이었다. 5주기를 기념해 그의 제자뿐만 아니라 그의 시를 사랑했던 작가·평론가들까지 한데 모여 낭독회를 갖는다. 2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산울림소극장에서 열리는 '두두, 나는 나무속에서 자본다'.

낭독회의 제목도 참여자들의 면면도 의미심장하다. 우선 제목은 시인이 임종 순간 마지막까지 썼던 시에서 따온 것. '한적한 오후다/ 불타는 오후다/ 더 잃을 것이 없는 오후다/ 나는 나무 속에서 자본다'라는 4행시를 고인은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제자였던 시인 이원의 손바닥에 손톱으로 새겼다고 했다.

낭독회에 참여하는 문인들의 수는 30여명. 고인의 시와 산문을 읊는다. 서울예대 제자로는 이창기 이능표 황인숙 조용미 장석남 임후남 조현석 박형준 이기인 함민복 조연호 하성란 천운영 안성호 황성희 김미월이 있고, 그의 시를 좋아했던 후배 문인들로는 황현산 김사인 김기택 문태준 김행숙 김민정 황승식 등이 참여한다. 이 외에도 최정례 김동원 이경림 장경린 등 학교 외부 제자와 조연호 윤민석 등이 연주와 춤 공연 등으로 시인의 5주기를 추모할 예정이다. 강화도에 살면서 고인의 '능참봉'(조선시대 능을 관리하는 일을 맡아보던 종구품 벼슬)을 자처하고 있는 학교 제자 시인 함민복이 이날 낭독할 시는 고인의 동시 '새와 나무'다.

'가을이 되어/ 종일 / 맑은 하늘을 날다가/ 마을에 내려와/ 잎이 다 떨어진 나무를 만나면// 새도 잘 익은 열매처럼/ 가지에/ 달랑/ 매달려본다// 다리를 오그리고/ 배를 부풀리고/ 목을 가슴 쪽으로 당겨/ 몸을 동그랗게 하고/ 매달려본다// 그러면 나뭇가지도/ 철렁철렁/ 새 열매를 달고/ 몇 번/ 몸을 흔들어본다'

낭독회는 무료. (02)334-5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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