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
유리(琉璃)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다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치고,
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운 폐혈관(肺血管)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山)새처럼 날아 갔구나 !
[맥락읽기]
1. 화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 유리창을 보고 서 있어요.
--- 홀로 유리를 닦고 있어요.
--- 혼자에요,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고 있어요.
2. 언제 그렇게 하고 있는가? 시간은? 계절은?
--- 입김이 나는 걸 보니 추운 겨울 같은데요, 그리고 새까만 밤이에요.
3. 왜 나는 새까만 밤에 잠은 안 자고 유리창을 보고 있을까?
--- 잠이 안와서 그렇겠지요. 그리고 잠이 안온다는 것은 근심 걱정이 있다는 것이고요.
--- 슬픈 일이 있나봐요(1행). 그리워하고 있어요(4행). 누군가 산새처럼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날아가 버렸대요. 외로와요(8행).누군가가 떠나 갔어요(9,10행)
4. 화자의 심정은 어떤 것 같니?
---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대요, 물먹은 별이래요, 누군가 산새처럼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떠났대요.
→ 슬퍼하고 있어요.
5. 그 누군가는 어떻게 됐길래?
--- 고운 폐혈관이 찢어졌으면 죽은거죠.
--- 산새처럼 날아갔어요. 어디로 갔는 지는 모른다.
6. 슬프면 술을 마셔도 될텐데, 왜 하필 유리창을 보고 있나?
--- 방안은 답답하니깐요.
7. 유리창을 보면 답답한게 사라지니?
--- 밖이 내다보이니깐요.
8. 그래도 방안에 있는 건 마찬가진걸?
--- 방 안에 있어도 밖이 보이기만 하면 덜 답답해요. 그래서 밖을 볼 수 있는 유리창을 달지요.
9. 그럼 '나'는 유리창을 보면서 슬픔을 잊고 있겠네?
--- 그런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요.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고 그래요, 슬픈 것이 자꾸 어른거려요.
10. 그럼 유리창은 나의 슬픈 마음을 지속시키네?
--- 예, 보기만 하게 만드니깐요, 볼 수만 있게 하니깐요. 슬픈 내 모습을 비춰주니깐요.
11. 그러면, 유리창과 슬픔이 연관이 있는건가?
--- 유리창은 밖을 보여주기만 하고 못 나가게 가로 막고 있어요. 죽음(이별)은 보고 싶게 만들기만 하고 만날 수는 없게 해요.
12. 결국 말하고 있는 것은?
--- 슬프고 답답하여 유리창을 닦으며 밖을 내다보아도 그것이 없어지기는 커녕 더욱 간절해지고 있어요.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든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러치도 않고 여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안해가
따가운 해ㅅ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석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맥락 읽기]
1. 화자가 노래하는 대상은 무엇인가 ?
--- (떠나온)고향.
2.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를 후렴구로 생각하면 전체 5연이다.각연의 공통 구조를 찾아 보자.
--- '∼하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3. 이로 미루어 볼 때, 이 시의 내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
--- 이러 그러한 아름다운 고향, 꿈에도 잊을 수 없구나.
4. 화자의 처지는 어떠한가. 어디에 있는가.
--- 가족과 헤어져 먼 타향에 살며 고향을 그리워 하는 젊은이.
5. 각 연의 노래하는 대상을 구체적으로 나열해 보고 그것이 고향의 어떤 모습을 이야기하는지 생각해 보자.
--- 1연 : 고향의 들판,누렁황소 (시 전체의 공간적 배경)
--- 2연 : 빈 밭의 밤바람,늙으신 아버지 (삶의 고단함,피곤함)
--- 3연 : 풀섶을 헤치며 놀던 어린 시절의 나 (고향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
--- 4연 : 어린 누이,아내 (가난하고 어려운 삶)
--- 5연 : 고향집,가족들 (가난하지만 정겨운 삶)
6. 화자가 고향에 대해 가지는 기억은 어떤 것인가 ?
--- 포근함과 아름다운 꿈이 서린 곳
--- 가난하고 고단한 삶의 모습이 담긴 고향
7. 반복되는 후렴구의 효과는 무엇일까 ?
--- 고향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
8. 이 시에 등장하는 비유적 표현을 모두 찾아 보고 그 의미를 생각해 보자.
--- 금빛 게으른 울음 : 따사로운 봄볕 아래 언덕에 누워 되새김질하던 황소가 간간히 하품 같은 긴 울음을 운다.
---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 한밤중 집앞 빈 밭에 겨울 찬바람이 자그마한 초가집을 흔들어 대며 불어 댄다.
---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 찰랑 찰랑한 쌔까만 단발머리(를 휘날리며 촐랑대며 돌아다니는 순박한 촌 계집아이)
9. 다음은 같은 작가의 "고향"이라는 시다. "향수"에서 그토록 그리워하고 아름답게 묘사했던 고향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서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
--- "향수"에서도 삶의 고단함이 표현되고 있지만 사실적으로 표현되기 보다는 다분히 미화되어 있고 화자는 그 삶의 고단함에서 한발 비껴 서서 국외자의 자세로 말하고 있어 고향의 모습을 관념적으로만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고향의 참모습을보지 못했다. 그러나 "고향"에서는 진실로 발 붙이기 어려운 고향의 실상을 보고 노래하고 있다.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뫼 끝에 홀로 오르니
흰 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나고
메마른 입술이 쓰디 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 높푸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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