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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에 절경이 될 만한 곳이 꽤 있다. 검단산, 남한산성의 벌봉, 법화사 절터, 청량산, 금암산, 이성산, 객산, 두미강 등이다. 모든 곳이 다 절경이지만, 이 가운데서 검단산 정상이 단연 돋보인다. 이곳은 하남시민들뿐만이 아니라 수도권의 등산객들한테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산봉우리에서 바라보는 느낌은 매우 인상적이다. 검단산과 예봉산의 단단한 암맥을 뚫고 하류로 벅차게 흘러 내려가는 한강의 물줄기를 바라보거나, 양평의 용문산을, 서울의 북한산과 도봉산을, 남양주의 천마산과 멀리 경기도와 강원도 경계에 놓인 화악산을 바라보면 답답했던 가슴이 한순간에 녹아내린다.
그러면 하남시 제1비경은 어디일까? 나는 머뭇거림없이 검단산 아랫자락에 있는 낙엽송 숲을 꼽는다. 이곳은 하남애니메이션고등학교 앞쪽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10분 정도 오르면 나타난다. 그러니까 호국사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바로 나타나는 곳이 검단산 낙엽송 숲이다. 이곳 가운뎃길을 따라 더 올라가면 폐광약수터-헬기장-검단산정상이 나타난다. '비경'이라는 말이 신비스러운 곳을 가리키는 것인데, 등산객들은 이곳을 별다른 관심 없이 지나가기 때문에 신비스러운 느낌은 들지 않을 것이다. 검단산 낙엽송 숲이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어렴풋한 기억이지만, 오래 전에 조림된 것으로 보인다. 지금 낙엽송의 높이가 20-25m, 굵기가 20-25cm 정도가 되니 이 추측은 그리 많이 빗나가지 않을 것이다. 이 나무는 다른 나무에 비해 키가 크기 때문에 그만큼 그늘도 깊다. 또한 나무에서 나오는 특유의 냄새는 기분을 좋게 한다. 이 냄새가 맑은 바람을 타고 숲 전체로 퍼진다. 그러나 이 숲의 면적은 자세히 알 수 없다. 그 까닭은 내가 산림전문가도 아닌 탓도 있지만, 더군다나 이 숲의 주인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이 낙엽송 숲이 가지고 있는 원근법적 비경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이곳 낙엽송들은 모두 하늘을 향해 곧추서 있다. 낙엽송은 밤나무와 참나무와는 달리, 옆으로 퍼지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나무들 모두 늘씬한 몸매를 자랑한다. 잎은 짧은 바늘처럼 가지에 촘촘히 박혀 있으나 소나무와 잣나무 잎처럼 길거나 두텁지 않아 햇빛을 다 막지는 않는다. 다른 나무들은 잎이 크고 엉겨서 그 숲을 어둡게 하지만 낙엽송은 잎이 작고 나뭇가지가 성겨 어둡지 않다. 낙엽송이 아닌 다른 나무들의 숲이 창문의 휘장을 완전히 내렸을 때의 밝기라면 낙엽송 숲은 이것을 반쯤 열었을 때의 밝기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숲의 밝기는 나처럼 산과 숲의 무섬증이 있는 사람한테는 딱 좋다. 검단산 낙엽송 숲은 걷기에 좋다. 이것은 물론 주관적 느낌이어서 이곳을 자주, 또는 매일 오르는 사람들한테는 이 표현이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숲 들머리부터 바윗돌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 길은 마치 바윗돌을 깔아 만든 길처럼 울퉁불퉁하다. 비나 눈이 올 경우 미끄러지기 십상이다. 이런 길을 걷기에 좋은 길이라고 했으니 이에 대한 불만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길은 원래부터 바윗길이다. 돌바닥 길은 보폭이 자유롭지 못하다. 더군다나 빠른 걸음으로 걸어서 올라가는 사람들에게 이 바윗돌은 장애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돌길은 걸음걸이를 여유롭게 하여 오름을 재촉하지 않게 한다. 숲길은 평지의 길과 다르다. 평지의 길(도심의 길)은 생각을 복잡하게 하지만, 숲길은 이것을 자유롭고 편안하게 해 준다. 이런 길을 걷다 보면 복잡한 생각이 저절로 가지런하게 되며 때로는 자연의 큰 힘을 얻어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영감을 얻기도 한다. 검단산 낙엽송 길은 이런 힘을 안겨 준다. 그래서 이 숲길은 걷기에 좋다. 또 하나, 이 낙엽송 숲은 산의 정상을 가리고 산의 들머리를 가린다. 이 숲의 중간쯤에 서면 현재의 위치만 인식할 수 있다. 멀리 바라볼 수가 없다. 나뭇가지가 성긴 낙엽송이지만 워낙 많은 나무들이 우뚝 자라 산의 위와 아래를 바라볼 수가 없다. 이 숲이 이렇게 멀리 바라봄을 허락하지 않는 까닭이 있다. 산 정상을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은, 오직 정상만을 향해 오르는 사람들에게 그 목표 의식을 흐리게 하여 여유 있는 산 오름을 하게 하기 위함이다. 산 들머리를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은, 이 숲에서 가능한 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도록 하여 힘들고 고된 일상의 터로 돌아가는 것을 좀 더 늦추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니 검단산 낙엽송 숲은 기를 쓰고 올라가는 일도, 서둘러 내려가는 일도 멈추거나 늦춘다. 따라서 이 숲에서 머물다 보면 검단산 정상을 오르지 못한 것에 마음이 얽매이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산을 내려갈 수 있다. 또한 머묾의 시간을 늘려 산행의 기쁨을 충족시켜 삶을 더욱 활기차고 생기 있게 한다. 이것은 검단산 낙엽송 숲만의 매력이다. 마지막 하나, 검단산 낙엽송 숲은 늦가을에 빛난다. 가을 산, 그 어느 곳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지만, 검단산은 더욱 아름답다. 푸른 산 빛을 다한 검단산 산봉우리에 화산이 터져 울굿불긋한 단풍의 용암이 흘러내리는 모습을 바라보면 이내 눈이 충혈된다. 이 붉은 용암은단풍나무와 갈참나무를 모조리 불태운다. 산 전체가 맹렬히 타오른다. 이윽고 이 용암은 낙엽송 숲 언저리를 덮치기 시작한다. 거침없는 샛노란 용암의 흐름이다. 이 빛은 광산 암석에 박힌 금맥처럼 눈부시다. 거기에 눈이라도 내리면 황금빛 물듦에 어질해진다. 이것은 낙엽송 숲의 절정이요 검단산 가을의 끝이다. 차릴 것도 없이 그냥 낙엽송 숲으로 가 보자. 평범할 것 같지만 절대로 평범하지 않은 검단산 낙엽송 숲에 가 보자. 맑은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낙엽송 나무들과 조용히 이야기를 나눠 보자. 있는 모습 그대로 보여 주는 나무들과 있는 모습 그대로 이야기를 나눠 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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