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미학에서
대학원 학생 시절에 논문을 써서 선생님께 보여 드렸다.
그중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텅 빈 산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비는 부슬부슬 내리는데
空山木落雨蕭蕭
(빌 공, 뫼 산, 나무 목, 떨어질 락, 비 우, 비내리는 소리 소)
선생님께서 대뜸 이렇게 말씀 하셨다.
"너는 사내녀석이 왜 이렇게 말이 많으냐?"
무슨 말씀인지 몰라 잠자코 있었다.
선생님은 원문에 빌 '공(空)'자를 손가락으로 짚으셨다.
"이게 무슨 글자지?"
"빌 공(空) 입니다."
"거기에 '텅'이 어디 있어? 공산(空山)이면 그냥 '빈 산'이지, 왜 '텅 빈 산'이냔 말이야?"
그러고 보니 '빈 산'하면 될 것을 '텅 빈 산'이라고 번역해 놓았다.
" '나뭇잎'이나 '잎'이나 마찬가지니까 그냥 '잎'이라고 그래!
'떨어지고'도 '지고'로 고쳐!
'비는 부슬부슬'이라고 하면 충분하지, 부슬부슬 올라가는 비도 있다더냐?"
한참 정신을 못 차리게 야단치시더니. 이렇게 고쳐 주셨다.
빈 산 잎 지고 비는 부슬부슬
처음에 22글자 였던 것이 11글자로 줄었다. 딱 절반만 남았다.
그런데 이렇게 줄이고 나니 가을날 빈 산에 낙엽 지고 비 내리는 광경이
더 선명하게 그려졌다.
나는 여기서 글 쓰는 방법을 크게 깨달았다.
요점은 이런 것이다.
말을 아낄수록 좋은 글, 좋은 시가 된다.
자꾸 설명하려 들지 마라. 단지 보여주기만 해라.
예)
한 줄 두 줄 기러기
만 점 천 점 산
삼강 칠택 밖
동정 소상 사이
- 이달
*정민 교수는 한양대 국문과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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