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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 산책로 ◑

안개 / 민병도

by sang-a 2012. 6. 12.

 

안개

                                        민 병 도

 

새벽부터 스멀스멀 안개가 숲을 먹는다

오래 굶은 짐승처럼 산을 통째 먹는다

길 없는 길을 걸어와 마을마저 삼킨다

몽유의 붉은 혀가 기갈을 다 채울 무렵

슬픔이 두려운 비폭력 평화주의자처럼

민초의 뜨거운 피도 잠시나마 안는다

하지만 삼키지 못한 맑은 물소리 앞에

함부로 뺏앗은 들과 길을 도로 뱉어 놓고

깃발도 꽂지 못한 채 점령지를 철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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