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자고 간 그 놈 아마도 못 잊겠다
와(瓦)야 놈의 아들인지 진흙에 뽐내듯이 두더지 영식인지 꾹꾹이 뒤지듯이 사공의 성녕인지 상앗대 지르듯이 평생에 처음이요 흉측히도 얄궂어라
전후에 나도 무던히 겪었으되 참맹세 간밤 그놈은 차마 못잊을까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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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미상으로 전해오기도 하고 이정보의 글이라고 전하기도 한다.
사설시조가 처음 아래에서 치고 올라올 때엔 이런 性에 관한 저속한 이야기가 많았다. 아마도 사대부문학으로 자리 잡고 있는 시조에 대한 아래층의 저항의식에서 나타난 현상인가 한다.
작가미상으로 되어 있는 까닭은 두 가지로 생각 해 볼 수 있는데 양반문학으로 태어난 시조에서 일반 백성들의 작품이 문집에 오를 수 있는 길은 매우 어려운 것이어서 구전으로 내려온 것도 있을 것이고 또 한 가지는 조정에서 물러나 낙향한 사대부들이 강호에 묻혀 살면서 기득권층을 겨냥하여 지은 사설이 있을 수 있는데 이 경우도 작가의 신분을 밝히기는 곤란하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서민층에서 나온 사설도 있고 사대부 층에서 나온 사설도 있을 수 있는데 그런 부류의 사설시조가 작가미상으로 전해오는 것 같다.
위 글은 내용으로 봐서 여성이 쓴 것으로 되어 있고 표현하는 능력으로 봐서도 대단한 지식층의 사람이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연 그 당시에 여염 집 아낙 입장에서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용기가 있을 것이며 이만한 글재주를 갖고 있는 아낙이 있을까 생각 해 볼 수 있다. 전에도 무던히 겪었다면서 찌르고 뒤지는 솜씨가 놀라운 그 녀석 때문에 감탄했다고 한다. 비록 속으로는 그런 감탄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드러내어 글로 표현할 수 있는 여자가 있겠는가. 요즈음 여류시인이라도 감히 쓸 수 없는 글이다. 오르가즘 연작을 쓰고 있는 나도 이런 표현은 능력도 안 되거니와 용기도 없다.
그렇게 유추 해 보건대 이는 어느 식자층이 쓴 것을 갖고 대제학을 지낸 이정보가 썼다고 올려놓았으니 누군가가 장난질을 했을 수 있다. 이정보가 놀기 좋아하고 파탈을 했다고 해도 자신을 여자로 바꾸어 놓고 수작을 부리지는 않았을 것이며 떠도는 노래를 누군가가 이정보로 덮어 씌웠을 것 같다.
아무튼 우리 조상님들은 장난을 해도 너무 심하고 재미있다.-참고문헌:한국문학통사 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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