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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고가면 더 좋다 ◑/고궁. 사찰

면앙정 송순

by sang-a 2014. 2. 16.

면앙정 송순 (俛仰亭 宋純, 1493∼1582)

송순의 자(字)는 성지(誠之) 혹은 수초(守初), 호(號)는 면앙정 혹은 기촌(企村), 본관은 신평(新平)이며 시호는 숙정(肅定)이다. 
눌재 박상(訥齋 朴祥)의 문인으로 호남시가의 원조이며 김인후(金麟厚)·박순(朴淳)·기대승(奇大承)·고경명(高敬命)·정철(鄭澈)·임제(林悌) 등 많은 명류후진을 배출한 시가와 학문의 대가이다. 
 
성종 24년(1493) 현 담양군 봉산면 기곡리 상덕마을에서 태어나 1513년 21세에 진사가 되고 1519년 별시문과 을과(乙科)에 급제, 승문원(承文院) 권지부정자(權知副正字)가 되었고, 이듬해 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 겸 춘추관기사관(春秋館記事官)이 되었다. 이후 예문관봉교(藝文館奉敎, 1523년), 세자시강원설서(世子侍講院說書, 1524년, 이때 담양 기촌에 면앙정 基地를 사들임),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 1527년), 홍문관부응교(弘文館副應敎, 1533년), 홍문관집의(弘文館執議), 홍문관직제학(弘文館直提學, 1537년), 대사간(大司諫, 1540년)을 역임하였다. 그 후 1547년 진문사(秦聞使)로 북경을 다녀왔으며 대사헌(大司憲)·이조참판(吏曹參判, 1550년) 등을 역임하였다. 1552년 담양 기촌에 머물면서 면앙정이 중즙(重葺)되자 기대승이「면앙정기」를 쓰고 임제가 「면앙정부」를 짓고 임억령·김인후·박순·고경명 등이 영시(詠詩)로써 면앙정삽십영을 창화(唱和)하였다. 1562년(명종7)에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으며 1568년 한성부좌윤(漢城府左尹)이 되었고 이후 의정부우참찬(議政府右參贊) 겸 춘추관사(春秋館事)가 되었으나 병으로 귀향, 이후 14년간 향리에 묻혀 유유자적하면서 여생을 보냈다. 

1579년 87세가 되던 해 과거에 급제한지 60돌을 맞이하여 회방연(回榜宴)을 베풀 때 처음 등과했을 때와 똑같이 제물을 내렸고 여기에 정철·고경명·임제 등과 도백(道伯) 이하 많은 인사들이 모여 100여명이 되었다고 한다. 1582년 90세를 일기로 별세하였고 담양 구산서원(龜山書院)에 제향되었다.

면앙정은 1524년 세자시강원설서(世子侍講院說書)가 되었을 때 고향인 기촌에 면앙정 기지를 사두었다가 1550년 이기·진창복의 탄핵으로 유배되었다가 1552년 유배에서 풀려난 뒤 고향에 머물면서 면앙정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현재 면앙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측면과 좌우에 마루를 두고 중앙에 방을 배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