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렬한 투쟁과 오감의 논객/김정란 |
김정란 (시인, 상지대 교수)
1953-01-01 [양]
서울 출생
외국어대 불문과 및 프랑스 그로노블3대학 졸업
어두움의 기록 1
나는 어떤 어두움에 얻어맞은 것인가.
어떤 결핍에 의하여
내 실존은, 본질에 대해,
이토록 민감하게, 거의, 물리적으로
感을 잡으면서도,
어떤 형식의 不在에 의하여
이토록 그것으로부터 늘
이반되는가, 대체,
세계의 밝음, 세목의 즐거움에서
놓치지 않고 그림자, 결핍의 예감을
감지하는 이-존재의 뻐그러짐.
나는 머리를 쳐든다, 알 수 없다
이 절망의 뿌리에서 나를 지켜주는
이 지독한 갈증, 그것의
성실성이 얼마나 끝간 데를
모르는가를.
나는 세목의 확인에서 빛의 예감에까지
철저히 움직인다. 일단은,
그 수밖에 없다. 얻어맞은 자아여
치유 너의 아이덴티티를
꿈꾸며. 눈을 뜬 채. 세계의
세목으로부터 절대로
눈돌리지 않은 채로. 詩. 김정란
잔혹한 외출 / 김정란
바다
해가 졌다
저녁내 흔들리는 모랫벌
대낮은 편안한, 규정된 부피를 부정하는
칼처럼 달이 뜨고
바람이 잔잔히 불기 시작한다
살이 저며지고 있다
아니, 오해 마시기를
이건 부패가 아니다,
싱싱하고 생생한 선혈이 뚝뚝 떨어지는
신선한 살의 이별
결 따라 완벽하게 저며져 뼈를 떠나는 삶
희디흰 뼈 눈부시게 드러나고
바람과 바람의 결 사이에 촘촘히 박혀 있던
잊혀진, 강렬한 말들이
핏줄 위에서 널을 뛰기 시작한다
잔혹한 외출
최소한의 삶으로 버티던 여자 하나, 모랫벌을 달려가
시퍼런 바닷물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 * *
영혼의 일란성 쌍생아
- 김정란의 '雪國-검은 반점들' 권명환(gipsy)
하루종일 가슴에 낮은 바람이 불었다
그리곤 밤에 눈이 내렸다 <그>가 문득 세계의 끝으로부터 휙 날아왔다 가만히......어두움의 동굴 속에서......아주 낯설어진 너무나 가벼워진 내가 <그>에게 물었다
누구?
어두움이 섬뜩하게 거대한 원을 그리며 선회하고 그리고 그 어두움의 끝이 불길하게 흔들렸다 캄캄해 내 눈 속에서 이리처럼 새파란 불꽃이 튀었다
가슴속에서 태초의 혼돈이 미친듯이 날뛰며 일어났다 알 수 없는 규정할 수 없는 잔인하고 절대적인 無......그러나 냄새, 잠깐 스치는, 기이한, 거의 물질적인 확실성, 어느 미지의 낯선 내가 나도 모르게 동의하는......
차가운 바람이 휙 사물들을 관통하고 지나갔다 나는 바깥을 내다보았다 눈발이 일제히 잠깐 푸르르 흔들렸다......<그>가 가는 것일까......사물들이 편안함으로부터 뿌리째 뽑혀나와 으르렁댔다 나는 내 살 깊은 곳에서 투명하게 떠오르는 비물질적인 검은 반점들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곤 들리지 않는 소리의 왕국에서 작은 핏톨들 밑의 보이지 않는 다른 핏톨들이 왕왕 사납게 짖어대기 시작했다
1. 저주받은 말
현대인의 방향성의 상실을 보여주는 가장 적나라한 지표는, 존재를 드러내는 말言의 '전락'이다. 말이 스스로의 충만함을 잃어버릴 때 우리는 그 자체로 충만한 삶의 존재방식을 망각하고 사물과 존재의 단절, 우주와의 소통불능을 경험하게 된다. 지금 이 순간, 외계인의 지구침략 파일은, 현대인을 '허무개그로 대화하는 바보들, 지하철의 빽빽한 틈바구니에서도 사람을 그리워하는 이상한 종족, 하루일과는 길 잃고 헤매임 '이라 적지 않을까. 18세의 정신분열증 환자에게서 들은 이 황당한 상상은, 그러나, 가볍게 흘려 넘길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인간은 세상에서 길을 잃어버렸을 때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멀어진 것이다. 여기, 우리가 신성(神聖)이라 불렀던 지점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극단으로 자신을 소외시키면서 동시에 가장 완벽하게 자기 존재를 회복하려는 시인이 있다. 말에 주술을 걸고 언어를 통해 스스로를 구축하는, 끊임없이 자신이 되고자 하는 존재 갱신으로의 시쓰기. 김정란은 박탈당한 실존을 회복하고 잃어버린 인간을 찾는 일에 운명을 건 시인이다. 오직 존재 혁명을 꿈꾸며.
혹시 여러분은 김정란의 '사이렌 사이키'를 듣거나 그녀의 시를 소리내어 읽을 때 이상한 느낌에 사로잡히지 않으셨는지. 편안한 리듬의 흐름에 안심할 찰나, 섬뜩함, 소름끼침, 텅 빔, 황량함, 충만함이 휙 스치지 않으셨는지. 그때 말의 철창을 부수고 내면으로 습격하는 낯선 이미지와 맞닥뜨리진 않으셨는지. 김정란은 사물과 말과 시간이 단절된 끔찍한 현장의 한복판에 스스로 몸을 던져 고립된 존재를 매개하는 내면의 영매(靈媒)이다. 따라서, 우리가 겪은 이상한 경험은, 이미 오래 전에 감작되었으나 잊고 지낸 존재의 기억을 순식간에 일깨우는 내면의 알레르기 반응이다. 김정란이 유발한 내면의 알레르기를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는 먼저 고립된 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말은 존재를 드러내려는 욕망이니까. 아울러,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모임을 통해 우리가 시를 낭송하는 행위는, '전락'한 말을 일깨우는 일종의 주문(呪文) 외우기니까.
그리하여, 괴상한 시읽기를 이 자리에서 제안한다. 자, [죽은 시인의 사회]의 구성원들도 직접 경험해 보시길. 여러분의 눈을 김정란의 시 '雪國-검은 반점들'의 첫 행 한 가운데에 고정하고 아래로 쭉 읽어보시길. 여러분의 눈에는 '낮은 바람' '섬뜩하게' '흔들렸다' '투명하게' '검은 반점' '핏톨'과 같은 말이 보일 것이다. 그 말들은 황량한 벌판에 각자가 고립되어 있다. 다시, 말들이 고립된 풍경을 가만히 보시길. '낮은 바람'은 고개를 떨구고 있다 서늘하다. '흔들렸다'는 자꾸 어딘가에 기대려 한다 어쩐지 불안하다. '투명하게'는 이상한 진흙을 몸에 덧칠하는 동작을 반복한다 팔이 지워지고 얼굴이 지워진다. '핏톨'은 더 이상 흐르지 못하고 점점 오그라든다. '검은 반점'은 저만치 떨어져 꼼짝도 않는다 그저, 그렇게, 유배지처럼. 죽은 말(言), 저주받은 말들.
2. 리듬 - 지독한 배고픔
고립된, 황량한, 저주받은 말을 향하여 김정란은 주문을 외운다. 언어에 내재한 비밀스러운 힘을 일깨운다. 주문을 외워 말을 불러모은다. 주문을 외우자 고독한 말, 저주받은 말이 일순간 긴장한다. 말이여, 뒤돌아보지 마라. 뒤돌아보는 순간, 그대는 알 수 없는 운명에 휩싸인다. 거부할 수 없는 유혹. 주술에 취해 배타적이던 말들 각자의 적의가 사라지는 순간, 그녀는 말에 존재하는 인력(引力)과 척력(斥力)을 일깨워 서서히 리듬을 형성한다. 주술과의 접점에서 긁히는 말의 마찰력(摩擦力)으로 리듬은 새로운 리듬을 부른다. 고립된 말들은 마침내 변화무쌍한 통일체로 흐른다. 김정란은 대지와 우주의 리듬에 자신의 리듬을 조율할 줄 아는 시인이다. 그녀가 24세에 쓴 '백골이 만나는 여름'이라는 시를 보자. 눈으로 읽었을 때 일견 유치하게까지 보이는 이 대목, 사이보그의 음성을 패러디한 것으로도 읽히는 이 대목,
그래 생각해 보자 나는 내 세포를 들여다보았지
세포들이 말한다 눈치챘다 오바
여기는 바야흐로 내리막길 오바
생장 중지 오바
준비 완료
자동 시스템 가동 시작
오바 오바 오바
내 가족과 조상들이 비로소 말을 걸기 시작했다
- '백골이 만나는 여름' 중에서-스.타.카.토. 내 영혼
는, 그러나, 반복해서 소리내어 읽을 때, 우리는 곧 기이한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그 리듬은, 제의에서 둥 둥 둥 북을 두드릴 때의 단순함을 닮았다. 단순한 리듬의 반복은 순수한 믿음이며 순결한 소망이다. 둥 둥 둥 오바 오바 오바 반복되는 리듬은, 죽은 시간과 현존하는 시간 사이의 가교(架橋)이며 원형적, 신화적 시간에 대한 지독한 배고픔이다. 보라, 이어지는 시구 "내 가족과 조상들이 비로소 말을 걸기 시작했다 "는 김정란 식 주술의 증좌(證左)가 아니겠는가.
사람은 그 자체로 리듬이다. 피의 흐름이 판막을 치고 솟구쳐 오르는 순간의 격렬함과 사지(四肢)의 말단으로 천천히 밀려드는 피의 잔잔함, 김정란은 그 자체로 리듬이다. 즉, 시 '雪國'의 리듬은 김정란의 내면 그 자체이다. 낮은 바람이 불던 내면에 낯선 타자가 출현한다. '가만히......' '동굴 속에서......'의 말줄임표는 기다림의 자세이며 부재하는 있음, 곧 부재하는 타자에 대한 기다림이다. 그러나, 리듬은 순식간에 소용돌이에 휩싸인다. 균열! '태초의 혼돈이 미친 듯이 날뛰며' 내면의 균열 사이로 존재의 이면이 솟아오른다. '냄새, 잠깐 스치는, 기이한, 거의 물질적인 확실성, '의 쉼표는, 리듬의 흐름에 의식이 개입하는 자리이며 그 자체로 내면의 균열이다. 그러나, 거부하고 싶은 불편함 속에서도 '미지의 낯선 내가 나도 모르게 동의하는' 순간, 타자와의 겹침! 타자가 떠난 뒤에도 내면에는 '투명하게 떠오르는 비물질적인 검은 반점'이 남는다.
사라지지 않는 존재의 몽고반점. 그녀는 7~8살이 되기 전에 사라지는 몽고반점을 지금도 가지고 있단다 얼레리꼴레리. 그러나 우리는, 누구도, 몽고반점이 없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다. 우리가 다만 잃어버린, 다만 부재(不在)하는 현존을 부정할 수 있을까? 김정란의 몽고반점은 내면이 기억하는 타자의 흔적이다. 그렇다면 김정란의 몽고반점은 길이가 얼마나 되지? 5mm 이면서 5km? ('나는 찍찍 늘어난다 나는 5mm이거나 5km이다/ '여자의 말' 중에서) 결국, 김정란의 리듬은 우주의 리듬을 지향한다. 김정란의 리듬은 내면 그 자체니까. 김정란의 내면에는 수많은 몽고반점이 있으니까. 김정란은 수많은 타자니까.
3. 이미지- 벌거벗은, 나체(裸體)의
김정란의 시는 관능적이다. 여기서의 관능은 두 가지 측면에서 그러하다는 말이다. 전술한 것처럼 말을 유혹한다는 의미에서, 다른 하나는 나체(裸體)의 이미지라는 의미에서다. 그녀는 천박한 서술을 거부하고 벌거벗은 이미지로 시를 쓴다. 이미지는 의미와의 거리를 단번에 없애며 이미지 그 자체로 다른 이미지를 부른다. 이미지만으로 쓴 그녀의 시를 읽을 때 우리는 아무런 여과 없이 즉각 실재에 도달한다. 현미경으로 자신의 피부를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완충장치가 없는 실재는 우리를 당황케 한다. 이때의 실재는 부재하는 현존이다. 김정란은 우리가 다만 잊어버린, 영혼이 기억하는 실재를 벌거벗은 이미지 그대로 보여준다. 잔혹한 순수. 김정란의 시에서 벌거벗은 이미지는 본질적인, 있는 그대로의 실재를 단번에 마주보게 하는 에로티시즘이다.
때로 김정란의 이미지는 스캔들을 일으킨다. 우리의 사유토대를 무너뜨리는 모순어법, 무더위 속에 얼어붙은 영혼이 등장하고 ( '그러니 더위쯤 무서울 게 없다. 내 영혼은 영하 50도의 서릿발처럼 시퍼렇게 얼어붙어 있다'-내면의 천사 중에서), 없는 장소에 내가 서 있고 ('없는...... 장소에 내가 서 있다'- 雪國-쌓인 눈 중에서), 살아있는 자를 죽은 자가 바라본다.( '살아서 그렇게 한없이 당신을/ 바라보던 죽은 자들의 눈알들 -雪國-어리석은 사랑 중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김정란은 무의식과 의식을 끊임없이 가로지른다. 보라, 그녀는 시 '雪國- 검은 반점들'에서 '물질적인 확실성'과 '비물질적인 검은 반점'이라는 무의식과 의식, 육체/비육체를 동시에 보여준다. 이것은 김정란의 무의식이 의식을 피해 자신을 드러내는 자리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의 존재가 잃어버린 정체성을 기억해 내려는 자리이며 무의식, 곧 우리가 억압했던 타자로 뛰어들어 우리의 본성을 회복하는 자리이며 우리가 어떻게 타자들을 억압해 왔으며 그것이 올바른 것인가 아닌가를 반성케 하는 자리이다. 김정란은 시집 '그 여자, 입구에서 가만히 뒤돌아보네'에서 우리가 억압해 왔던 죽은 여자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말하게 하고, 균열을 통하여 우리의 의식/행위를 반성케 하고, 타자와의 매혹적인 겹침, 그 신성함에의 경험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균열, 존재의 균열은 낯설고도 두려운, 무섭고도 매혹적인 신성함에의 직면이다. 그것은 본질적인 것이다. 그것은 다시 존재가 되는 것이며 너무나 존재가 되는 것이다.
4. 영혼의 일란성 쌍생아
김정란 시의 리듬과 이미지는 일란성 쌍생아이다. 하나의 접합자(zygote)에서 기원하여 분열한 일란성 쌍생아, 공통의 태반 안에서 각각의 양막에 둘러싸여 서로를 응시하는 리듬과 이미지, 영혼의 일란성 쌍생아. 공통의 내면에서 김정란의 주술은 저주받은 말을 유혹하고, 리듬을 부르고, 리듬은 이미지를 일깨우고, 이미지는 다른 이미지에 겹쳐 스며들고, 또 다른 이미지로 새로운 리듬을 유발하고 다시 리듬은 우주의 리듬에 편입된다.
고립된 시어(詩語), 김정란의 주술에 유혹되어 신들린 리듬으로 춤추다가, 존재의 극단에 가는 동시에 스스로의 내면으로 복귀하는 말. 입술이 부르튼 말, 쉴새 없이 수다떠는 입술이 아니라 쉴새 없이 침묵을 재잘거려 입술이 부르튼 말. 흔들렸다. . . . . . . 의 말줄임표. 이 모든 김정란의 말(言)은 종국에는 기다림의 자세를 취한다. 영혼을 움직이는 리듬을 향하여, 그러한 방향성의 자세를 사랑이라 명명할 수는 없을까? 사랑은 대상과의 거리를 지우는 축지법이다. 비록 짝사랑이라도 마음은 대상에게 벌써 달려가 있다. 그런데, 사랑은 또한 한 걸음에 그대에게 다다를 수 있지만 두 걸음에 그대를 지나칠 수 있는 눈 먼 축지법이다. 따라서 사랑이라는, 그대와의 거리 지우기에는, 다다르는 방식, 곧 자세가 중요하다. 김정란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연둣빛, 분홍, 눈(雪)은 김정란의 기다리는 자세를 내포한다. 그대와 나의 스침에서 서로의 내면을 비워두지 않으면 각자가 스며들 수 없다. 연둣빛, 분홍, 눈(雪), 꽉 껴안았을 때 그대와 나의 빈 공간으로 스며드는, 그리하여 서로가 서로를 채우는, 기다림의 자세, 그 겸손한 자세를 사랑이라 부르면 안될까.
*이 원고는 김정란 시인 홈페이지에서 만난 네티즌들이 주축이 되어 열렸던 <시를 주제로 한 파티-죽은 시인의 사회(1)>에서 발표되었던 평론입니다.
(본 자료는 지식인들이 모여만든 카페 라니의 집에서발췌해왔습니다.) -치앙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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