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문학 & 예술 ◑

詩에서 이미지의 중복은 치명적 흠이다

by sang-a 2007. 3. 2.

詩에서 이미지의 중복은 치명적 흠이다

                                                                       / 신재한


오늘은 시를 쓰는데 있어서
이미지, 언어의 중복이 주는 단점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제가 술 한 잔 먹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는 중이었는데
택시기사 분이 교통통신원이었습니다.
교통방송을 틀어놓고 무전기로 교통방송과 교신을 하는데
특이한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청계천 상행은 10키로 이하로 서행하고 있고
종로 상행은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있으며,
퇴계로 상행은 거북이 운행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10키로 이하로 서행"이나 "가다 서다를 반복"이나
"거북이 운행"은 차량진행이 지체되고 있다는 같은 뜻입니다.

유심히 듣고 있다가 기가 막혀서 그 택시기사 분께 물었지요..
"아저씨.. 제가 듣기에는 같은 말인데 왜 다른 것처럼 이야기를 하지요?"
그러자 기사 아저씨는
"<청계천, 종로, 퇴계로 다 지체됩니다> 그러면 운전자들이 얼마나 짜증나겠어요?
같은 상황이라도 다르게 표현하여야 방송을 듣는 사람들이 지루하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저는 느끼는 것이 있었지요..

바로 우리가 하는 문학, 특히 시에서도 이런 점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시는 짧은 내용으로 많은 말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미지나 언어의 중복은 독자들에게 짜증나게 하는 효과를 가져오고
더 나아가 독자가 상상을 하는데 있어서 상상의 폭을 좁히는 요소가 되는 것이지요..

초보자들의 습작을 보면 이미지의 중복이나 시어의 중복이 많습니다.
이런 경향은 사물을 보이는 그대로 형상화를 하기 때문이지요..
다시 말해 이미지 압축기술이 약하다는 말이 됩니다.
시어의 부족 현상도 있고......

예를 들어보면

먼저 이미지의 중복 부분인 경우로는
"하얀 소복을 입은 여인처럼" 이라고 했을 때
소복의 이미지는 하얀색이므로 여기서 '하얀'과 '소복'의 이미지는 같습니다.
시는 이미지를 그려내는 작업인데
짧은 글에서 이미지가 중복되므로 치명적이라 할 수 있겠지요..
소복에 형용사를 붙여야 한다고 했을 때
차라리 " 비에 젖은 소복" 등으로 하면 다른 이미지를 가져올 수 있겠지요..

다음으로는 시어의 중복인데

"무수히 꽂혀 산란되는 햇살들 사이로
천사의 환영처럼 스쳐간 당신모습
그림자 얼굴에 미동도 않던 촉촉한 입술
긴 머리가 가지런한 햇살에 찰랑거리고
햇살들이 내겐 깃털처럼 보였다"

위 문장에서는 "햇살"이라는 시어가
한 문장에 3번 중복되었습니다. 이미 햇살이라는 시어를 통해
햇살의 이미지를 그려내고 있었는데
자꾸만 햇살이 나오니까 이미지가 고정되어 버렸지요..

여기에서 중복되는 시어를 바꾸어 본다면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가 있지요..

"무수히 꽂혀 산란되는 햇살들 사이로
천사의 환영처럼 스쳐간 당신모습
그림자 얼굴로 미동도 않던 촉촉한 입술
긴 머리가 가지런한 물결처럼 찰랑거리고
고요한 파장이 내겐 깃털처럼 보였다"

물론, 시어나 이미지가
강조나 운율을 살리기 위해 중복되는 경우("하얗게 하얗게", "살어리 살어리랏다")는 있지만
그러한 특수 효과를 노리는 경우가 아니라면
짧은 시에서 시어나 이미지의 중복은
치명적 흠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