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고전 산책로 ◑

고구려의 멸망

by sang-a 2007. 3. 8.


고구려의 멸망

당의 대군을 물리치는 연개소문

6세기말에 이르러 중국이 통일되고 북방에서 신흥국가가 성립되므로써 동아시아의 국제질서는 전면 재편되었다.
이때 고구려는 통일된 수나라와 전쟁(598년)을 시작으로 멸망할 때(668년)까지 중국세력과 약 70여년간 주변국가들을 끌어들이며 국제대전을 벌였다.
고구려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된 고구려 수나라 전쟁은 5차에 걸쳐 15년 동안 계속되었다. 특히 3차 전쟁 때는 수양제가 정병 113만 여명을 거느리고 수륙양면으로 침입해왔으나 대패하였고, 그 후유증으로 수는 5년 후에 멸망하였다.
고구려는 수를 이어 일어난 당과 다시 대규모의 전쟁을 벌였다.
645년에는 당태종의 친정군이 고구려를 공격했으나 전멸당하고, 당태종은 이 전쟁의 후유증으로 사망하였다.

 그 후에도 전쟁은 지속되다가 660년부터는 고구려, 당, 백제, 신라, 왜, 말갈, 거란, 돌궐 등 동아시아의 모든 국가들이 참여한 동아시아 지중해 국제대전으로 확대 되었다.
고구려는 친당세력들에 의해 고립된 채 협공을 받으며 전쟁을 치루다가 결국은 멸망하고 말았다.

제를 무너뜨린 신라와 당은 곧바로 고구려에 대한 공격을 서둘러, 이듬해 당의 수륙 대군이 고구려를 공격하고 신라도 군사와 군량을  지원하였다. 그러나 당군은 연개소문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쳐 참패하여  철수하고, 신라군도 혹독한 추위와 고구려군의 저항에 막혀 철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 고구려는 수.당과의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으나, 전쟁이 오래 계속되면서 국력이 소모되어 나라가 차차 기울어 갔다.  밖으로는 고구려의 지배 아래 있던 돌궐과 말갈족이 당에 복속하게 되어 요동 방위선이  약화되었다.
 이러한 때
연개소문이 죽자 정권을 둘러싸고 지배층 사이어 분열이 일어나 국력이 더욱 약화되었다.
연개소문이 죽자  정권을  장남 남생이 뒤에 이어 대막지리로 정권을  잡았는데,동생들인 남건과 남산이 힘을  모아 남생을 몰아내고 정권을 장악하였다.
 이에  남생은 옛 서울인 국내성으로 달아나 당나라에 구원을 청하였으며, 연개소문의 동생 연정토는 12성을 들어 신라에 투항하였다.

 신라와 당군은 이러한 틈을 타 다시 고구려를 침략하였다. 이세적이 이끈 당군은 요동 방면의 여러성을 함락 시킨후  압록강을 건너 평양성을 포위하고, 김인문이 이끈 신라군도 평양성에서 당군에 합세하였다.
 나당 연합군의 공격을 받은 고구려는 평양성을 굳게 지키면서 1년간이나 항거하였지만 끝내 성이 함락되어 고구려는 멸망하였다(668년).                                                                                                


'◐ 고전 산책로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구려 역대왕 계보  (0) 2007.03.08
고구려 황실 연대표  (0) 2007.03.08
고구려의 발전  (0) 2007.03.08
고구려를 빛낸 10개의 명장면 ( 2 )  (0) 2007.03.08
고구려를 빛낸 10개의 명장면 ( 1 )  (0) 2007.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