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신 이야기

조신 이야기


신라 시대의 일이다. 낙산사의 중 조신은 태수의 딸에게 반하여 상사병에 걸렸다. 견디다 못한 조신은 관음보살상 앞에 태수의 딸과 결혼하게 해 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그러나 태수의 딸은 시집을 가버리고 말았다. 조신은 관음보살상 앞에 나아가 슬프게 울고 또 울었다. 그러다가 조신은 지쳐서 깜빡 잠이 들었다.

그런데 뜻밖에 태수의 딸이 반가운 얼굴로 조신에게 나타났다. “스님, 저는 스님을 알게 된 후부터 마음 속 깊이 사모해 왔습니다. 부모님의 명에 따라 시집을 가기는 했지만 마음은 언제나 스님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견디다 못해 집을 뛰쳐나왔습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조신은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조신은 중노릇을 그만 두고 그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 살게 되었다. 그리하여 50년이 흐르는 동안 다섯 아이를 낳았다. 그러나 집이 가난해서 나물죽조차 넉넉히 먹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드디어 열다섯 살 먹은 큰아들이 배고픔에 지쳐 죽게 되었다. 조신은 슬피 울며 길가에 시체를 묻었다. 부부는 이미 늙고 병들어 있었다. 게다가 굶주림에 지쳐서 일어나 다닐 수도 없었다. 열 살 된 딸아이가 집집이 구걸을 해서 겨우 살게 되었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딸도 개에게 물려 눕게 되었다. 부부는 함께 울며 탄식하다가

“내가 당신을 처음 만날 때는 나이도 젊고 얼굴도 아름다웠습니다. 맛있는 음식이 생기면 정답게 나누어 먹었고, 옷감이 생겨도 당신과 함께 지어 입었지요. 그렇게 살아온 지 50년, 그러나 이제 몸은 늙고 병은 날로 깊어갑니다. 젊은 얼굴, 예쁜 웃음은 풀잎의 이슬과 같고, 굳게 맹세한 마음도 이제는 바람에 날리는 버들가지처럼 흔들립니다. 당신에겐 내가 짐이 되고 나는 당신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여기서 헤어져 따로 사는 것이 어떻습니까?” 라고 아내가 말했다.

조신도 그런 생각을 했던 터라 부부는 아이를 둘 씩 나누어 데리고 갈라서게 되었다. 그리하여 서로 잡았던 손을 놓고 돌아서는 순간 조신은 문득 꿈에서 깨어났다.


-<삼국유사>에서, 이석규 각색-


세상일에 너무 집착하는 것을 경계하는 불교적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