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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고가면 더 좋다 ◑/고궁. 사찰

종로의 고궁나들이<덕수궁>

by sang-a 2007. 3. 17.

 

덕수궁

교통 : 지하철 : 1호선 2번 출구, 2호선 12번 출구  시청역으로부터 도보 2∼5분
         버스 :  시청 정류장 하차, 도보로 2~5분


 


서울 중구 정동의 덕수궁은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집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왕궁이 모두

불타버려 피난에서 돌아온 선조가 이곳을 임시 거처로 사용하면서 행궁(行官)이 되었다.
선조의 뒤를 이은 광해군은 1608년 이곳 행궁에서 즉위한 후 1611년 행궁을 경운궁(慶運宮)이라

고쳐 부르고 7년 동안 왕궁으로 사용하다가 1615년에 창덕궁(昌德宮)으로 옮기면서 이곳에는

선왕인 선조의 계비 인목대비만을 거처케 하였다.
그 후 1618년에는 인목대비의 존호를 폐지하고 경운궁을 서궁(西宮)이라 낮추어 부르기도 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폐위되고 인조가 이곳 즉조당(卽祚堂)에서 즉위하고

창덕궁(昌德宮)으로 옮긴 이후 270년 동안 별궁(別宮)으로 사용되었다.
인조는 창덕궁으로 궁을 옮기면서 즉조당과 석어당만 남기고 그밖의 건물들은 옛 주인에게

돌려주거나 없애 버렸다. 그후 1897년 고종황제가 러시아 공관에 있다가 이곳으로 환궁하면서 이곳을

다시 왕궁으로 사용하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다시 경운궁이라 부르게 되었고 그 규모도 다시 넓혔다.
그러나 1904년에 궁궐 내에 불이 나 많은 건물이 타버렸으며 1906년 불에 탄 건물을 복구하고 대안문을

대한문으로 개명하였다.
대한문은 덕수궁의 정문으로 중화전 남쪽에 있었던 대안문을 옮긴 것인데 고종황제가 이름을

대한문으로 바꾸었다. 지금 대한문의 현판은 당시 예조판서였던 남정철의 글씨인데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
고종 황제는 1907년 순종에게 양위한 후 왕궁이 창덕궁으로 옮겨진 후에도 계속 이곳에 거처하였는데

이때부터 고종 황제의 장수(長壽)를 비는 뜻에서 덕수궁이라 부르게 되었다.
고종황제는 1919년 1월 21일 이 덕수궁 함녕전(咸寧殿)에서 죽었다.
덕수궁에는 지난날 많은 건물이 있었으나 현재 경내에 남아 있는 것은 대한문(大漢門),중화전(中和殿),

광명문(光明門),석어당(昔御堂),준명당(浚明堂),즉조당(卽祚堂),함녕전(咸寧殿),덕흥전(德弘殿) 및

석조전(石造殿) 등이 있다.
구중 석조전은 영국의 하딩이 설계하였으며 1909년에 완공된 조선조 궁중 건물로서는 최초의

석조 건물이며 집의 모양이 유럽의 르네상스식으로 지어졌다.
한때는 국립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으로도 사용되었다.
덕수궁은 특히 구한말(舊韓末) 비운의 황제 고종이 일제의 압박으로 양위를 강요당하고 한 많은

여생(餘生)을 보내다가 죽음으로써 3.1독립운동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던 곳이다.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