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디미방과 장계향 선생
장계향 선생은 7년간에 걸친 임진왜란이 막 끝나가던 1598년 11월.안동땅 검재에서 태어나 10세 나이에
<소학>을 깨우쳤고 13세가 되어서는 <백발 늙은이><몸가짐을 조심하다><소소한 빗소리>와 같은 시를 지었다.
그녀가 쓴 초서체 '적벽부'는 당대 서예가 정윤목이 "기풍과 필체에 호기가 넘쳐 우리나라 사람의 글씨와 다르다"고 평했다.
19세때 이시명과 결혼하였는데 이미 결혼하여 1남1녀를 둔 사람의 계실로 들어가 6남2녀를 낳아 훌륭하게 키웠다.
모두 10남매였다. 그 중 둘째 휘일, 셋째 현일, 넷째 숭일은 경상도를 대표하는 학자로 명성을 날렸다.
<<음식디미방>>은 나이 70이 넘은 장계향 선생이 자신의 지식을 집대성해 후손들을 위해 쓴 조리서이다.
소설가 이문열의 선대 할머니이자 그의 소설 <선택>의 주인공이기도 한 장계향 선생은 인자한 어머니, 현명한 아내,
자애로운 어른등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다.1680년 (숙종6년) 83세를 일기로 영양군 석보면 두들마을 내 석계고택에서
향년을 마칠때까지 자녀 훈도에 힘을 쏟으니 재령 이씨 가문이 더욱 크게 일어나 훌륭한 학자와 명망있는 동량들이
대대로 배출 되었다.
<<정부인 정씨 실기>>에는 선생의 여러가지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
영양군에서는 두들마을 앞에 선생의 덕을 기리는 비와 유물전시관을 건립하였다.
선바위 관광지구
조지훈문학관에서 보면 강 건너편에 위치한 곳이다.
강가의 우뚝 솟은 바위와 주변의 절경이 강물에 어려 기막힌 절경을 이룬다. 선바위가 서 있는 운룡지에 관한 설화가 있다.
옛날 이 지방의 물을 다스리는 수령에게 '아룡'과 '자룡'이 라는 형제가 있었다.
그들은 자신이 힘만 믿고 새로운 나라를 세울 역모를 꾀하였다.
무리를 모아 반란을 일으비자 조정에서 파견한 남이장군이 깨끗하게 물리쳤다.
장군은 도적이 무리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큰 칼로 산맥을 잘라 물길을 돌렸다. 그 때 남이장군이 물길을 돌린 마지막 흔적이 선바위다. 선바위로 이어진 강변길은 외씨버선길이다.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조지훈 <승무> 에서-
바로 <승무>에서 따온 이름이다. 영양을 문학의 고향으로 부른다.
시인 조지훈을 비롯하여 오일도 시인과 소설가 이문열. 동화작가 배익천을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인근에 있는 서석지는 광해군 5년에 정영방 선생이 만든 전통 조원이다.
담양의 소쇄원, 완도 윤선도 선생의 세연정과 함께 조선시대 3대 민간 연못 정원으로 선정되었다.
서석지 입구에는 400년 된 은행나무가 있어 세월의 더께를 실감케 한다.
기와집과 연못, 돌담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한국 정원 양식을 찾을 수 있는 문화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