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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협행사 ◑

2017 문학기행 (문학의 고향, 영양 ) 1

by sang-a 2021. 9. 14.

 

2017.5.1일 기행일지

 

청록파 시인(박목월.박두진)이며 국문학자인 조지훈 선생의 생가.

유서 깊은 주실마을을 가기 위해 잠을 설친 채 지하철  5 : 14분의 첫차에 몸을 실었다.

 

연초록으로 옷들을 갈아입고 있는 자연에 나를 조금씩 물들이며 문우들과 긴 시간을 달려 경북 영양에 도착하였다.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애정으로 우리를 부끄럽게 만드시는 김영훈 샘께선 차멀미를 하셔서 새벽 기차로 달려 택시를 타고 먼저 식당에 도착하여 계셨고 반가운 해후를 하며 즐거이 간단한 비빔밥으로 식사를 마친 후 주실마을로 향했다.

 

 

 

 

 

 

 

 

 

 

조지훈은 이곳 주실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전통마을이면서도 실학자들과의 교류와 개화 개혁으로 이어진 진취적인 문화를 간직한 매우 유서깊은 마을이기도 하다.

생가인 호은종택 (壺隱宗宅)은 경북 기념물 제 78홀 지정된 문화재이다.

또한, 이 마을 한복판에 자리잡은 옥천종택 (玉川宗宅)도 경북 민속자료 제 42호로 지정돼 있고 월록서당 등 많은

문화재들이 보존되어 있다.

 

 

 

 

 

 

 

본명은 동탁(東卓). 청록집의 시편들에서 주로 민족사의 맥락과 고전미에 대한 찬양과 선(禪)세계를 노래하였다.

유교 도덕주의의 격조 높은 자연 의식을 보인다는 점에서 시문학사적 의의가 크가.

한국전쟁 당시 일부 불탄 것을 1963년 복구하였다.

 

 

 

 

 

 

 

후학들을 교듁하고 양성하기 위해 세운 월록서당(月麓書堂)은 조선 영조 49년(1773)에 지었고

조지훈 시인의 대표적인 시를 돌에 새겨 세워놓은 시공원이 조성돼 있다.

산골짜기 지형을 그대로 활용하여 조성한 공원에는 선생의 동상과 20여개의 시비가 건립되어 있어

공원을 산책하면서 시를 감상할 수 있다.

 

 

 

 

 

 

 

 

 

 

 

 

뮨학적 업적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잘 꾸며 놓은 지훈문학관에는 시집과 저서 유품까지 잘 보존 정리해 두어

연구하는 학자나 후학들에게도 귀중한 학습자료가 되고 있다.

 

우리들의 발길을 잡는 조지훈의 수필 한 대목

 

 어떤 이 있어 나에게 묻되 " 그대는 무엇 때문에 사느뇨?' 하면 나는 진실로 대답할 말이 없다.

곰곰이 생각노니 살기 위해서 산다는 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산다는 그것밖에 또 다른 삶의 목적을 찾으면 그것은 사는 목적이 아니고 도리어 사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하나의 삶에서 부질없이 허다한 목적을 찾아낸들 무슨 신통이 있겠는가.

도시. 산다는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사는 판이니 어째 살고 왜 사는 것을 모르고 산들 무슨 죄가 되겠는가.--

         조지훈 < 멋 설 (設)> 1958년 <<신태양 >> -

 

 

 

 

 

 

 

 

 

조지훈은 한국문화사를 최초로 저술하였고 한국민족운동사를 펴내기도 했다.

1933년 <<문장文章)>>지에 고풍의상(古風衣裳)이 추천되어 문단에 나왔다.

전통적인 운율과 선의 미학을 매우 현대적인 방법으로 결합한 것이 조지훈의 특색이라 할 수 있다.

<청록집> <풀잎단장> <조지훈시선><역사앞에서><여윤>등 그가 남긴 시집들은 모두 민족어의 보석으로 높이 평가하고 있다.

특히, ,승무><낙화><고사>와 같은 시들은 지금도 널리 사랑받고 있는 민족시의 명작들이다.

 

 

 

 

 

광복이 되자 한글학회 국어교본 편찬원이 되고 진단학회 국사교본 편찬원이 되어 우리 손으로 된 최초의 국어교과서와

국사교과서를 편찬하였다.

그 후 1968년 기관지 확장으로 작고하기까지 조지훈이 저술한 <멋의연구><한국문화서설><한국민족운동사><시의원리>등의

저서는 한국학 연구의 영원한 명저가 되었다.

 

조지훈은 진리와 허위, 정의와 불의를 준엄하게 판별하고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엄격하게 구별하였다.

,지조론>에 나타나는 추상같은 질책은 민족 전체의 생존을 위해 도저히 참을 수 없어 터뜨린 양심의 절규였다.

 

 

 

 

 

 

 

일제강점기와 독재시대를 살아온 조지훈은 시인으로서, 국학자로서, 또한 당대의 논객으로서 지조를 지키면서 지식인의

자존심을 지켜냈다.

많은 지식인과 문인들이 폭력에 굴복하여 친일 행위에 가담하였지만, 절필을 할망정 결코 친일은 하지 않았으며 광복 후

전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한국문학작가협회 회장과 한국신시 60년 기념사업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한국 문단의 중추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는 학자로서 국학연구에 전력을 다하였고, 지조를 중히 여기는 참다운 선비로서 세상을 향해 쓴 소리와 곧은 소리를

터뜨리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우리 시대의 진정한 시인이며 지식인이요, 참 스승이다.

 

 

 

 

 

지조란 것은 순일한 정신을 지키기 위한 불타는 신념이요, 눈물겨운 정성이요, 냉철한 확집(確執)이기도 하다.

지조가 없는 지도자는 믿을 수 없고 믿을 수 없는 지도자는 따를 수 없다.

자기의 명리(名利) 만을 위하여 그 동지와 지지와 추종자를 하루아침에 함정에 빠뜨리고 달아나는 지조없는 지도자의

무절제와 배신 앞에 우리는 얼마나 많이 실망하였는가.-   조지훈 ,지조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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