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둘러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안국역에서 8시 10분에 출발하기로 되어 있는데 8시에 도착을 했다.^^
쌤들의 환한 얼굴들이 무척이나 반갑다.
호박떡 하나와 피로회복에 좋은 사탕 한 봉지. 거기다 출간된 시집까지 선물로 받고 보니
이른 아침부터 든든하다.
한참 들떠 가던 중
어머나 내 모자 어딨지?
헐~~ 잠시 안국역 화장실에 들렀다가 예쁘게 걸어둔 채 그냥 나왔구나......이긍.
어쩔 수 없지 . 어울리는 사람이 가져가 쓰면 되지, 뭐..^^ 아끼던 거라 아쉽긴 했지만 빨리 포기했다.
-------------2016.4.30일
국립수목원.
산림청 소속 부속기관인 임업연구원과 함께 경기도 포천시 소홀읍 직동리의 광릉 주변
약 500ha(150만 평)에 자리잡고 있다.
광릉은 세조의 능으로 결정된 뒤부터 소나무. 잣나무. 전나무등을 심어 왔으며 엄격하게 보호되어
왔다.
한일합병 뒤 1922년 임업연구원의 전신인 임업시험장이 생기면서 이곳은 임업시험장의 부속시험림이
되어 광릉수목원으로 개원 했으며, 1989년에 산림욕장이 개장되었고, 1991년 야생동물원을 만들었다.
1987년 광릉수목원으로 개원하면서 일반인에게 공개되어 공원이나 휴식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광릉숲은 '숲의 바다'이지만 그 바다엔 길이 나 있다. 광릉숲은 65개의 임반(산림의 위치와 넓이를
표시하여 측량이 편리하도록 구분하는 큰 단위)으로 나뉘고 각 임반은 또 여러개의 소반으로 나뉜다.
암반은 모두 13개 노선 45킬로미터의 임도를 통해 접근하도록 돼 있다.
광릉숲의 관리 지도를 보면 마치 동네 부동산 소개업소의 지번도를 보는 것 같다.
수백 년 동안 손대지 않은 천연 활엽수림과 그것을 둘러싸고 전국 평균의 약 4배인 핵타르당 255
세제곱미터의 목재가 축적돼 있는 인공림은 광릉숲의 두 얼굴이다.
이곳의 지명이 광릉내로 불리는 것은 조선 제 7대 세조와 정희왕후 윤씨의 능인 광릉이 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44여년 동안 풀 한 포기의 채취도 금지되었을 정도로 잘 보호되어 와서 산림은 울창하고
우리나라에서마 생존하는 진귀한 새 크낙새가 이곳에서 서식한다.
침엽수는 수종이 얼마 안되지만 활엽수는 약 150여종으로 우리나라 중부지반에서 자라는 낙엽 활엽수림은 인공을 가하지 않는 천연림으롯 소나무 참나무류의 거목을 주로 하여 온갖 종류의 나무와
자연 교배목들이 섞여 있고 곳에 따라서는 수령 200년 정도의 노목순림도 있다.
광릉특산식물
현재 '광릉'이라는 접두어를 가진 식물과 광릉에서 처음 발견돼 학계에 보고된 식물이 10종에 이른다.
'광릉'으로 시작하는 식물로는 광릉요강꽃. 광릉골무꽃. 광릉물푸레나무. 광릉제비꽃. 광릉개고사리등이 있다.
노랑앉은부채 . 개싹눈바꽃. 털음나무. 흰진달래. 털사시나무. 등이 있다.
일반인에게 광릉숲은 산책과 여가의 공간이지만, 그보다 소중한 것들이 그곳에 있다.
소리봉 주변의 천연림과 한 세기 가까이 가꿔온 시험림 그리고 각종 식물연구시설이 그것이다.
생물 다양성의 시대에 대규모 식물원으로서 광릉숲이 지닌 가치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산림과 임업에 관한 자료의 수집과 교육 및 현장학습. 표본 분류. 동정. 수장. 전시 및 연구를 목적으로
건립된 산림박물관이 있고
전문전시원을 관상 가치가 높은 나무를 모아 배치한 관상수원. 꽃이 아름다운 나무를 모아 전시한
화목원. 습지에 생육하는 식물을 모아놓은 습지식물원. 난대식물. 온실등으로 구성 되어 있다.
산림식물보전원
우리나라 산야에 서식하는 산림동물 중 멸종 되었거나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의 유전자원 보존과
보호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하여 1991년 개원하였다.
백두산호랑이.반달가슴곰. 늑대. 고라니. 독수리. 수리부엉이. 황조롱이. 원앙등 12종의 포유류와
조류가 약 20ha 면적에 보전되어 있으며, 동물의 번식기를 피하고 관람객의 안전을 위하여
5월부터 11월까지 6개월만 개방된다.
관람시간은 10시~16시까지이며, 자유관람으로 견학할 수 있다.
수목원 명소
전나무 숲
오대산 월정사의 전너무 종자를 증식하여 1927년경 조림한 나무로, 80년 이상의 수령을 자랑하고
있으며 전나무 숲길은 약 200m로 우리나라 3대 전나무 숲길 중 하나이다.
육림호. 숲생태 관찰로. 산림현장 기념비. 숲 명예의전당.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등재 기념조형물.
아름다운 숲 선정 기념비. 국토녹화 기념탑.
귀화식물원
잡초처럼 한번 뿌리를 내리면 무성하게 자라며 빨리 이웃으로 퍼져나간다.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말 개화기를 경계로 하여 개화기 이후에 외국에서 들어온 식물들을 귀화식물이라고 부른다.
그밖에 한국의 특산식물원. 희귀및 멸종위기식물원이 있고 고산식물원. 염생식물원. 초지 사료식물원.
습지 수생식물원등 그 성격과 환경에 따라 구분되어 관리되고 있다.
봉선사
개관 : 남양주시 진접읍 소재 봉선사는 지난 19일 '운악산 봉선사 개산 1046주기 개산대재 법요식'이 열렸다.
봉선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 25교구 본사로서 고려 광종 20년인 969년에 법인국사 탄문이 운악산 자리에 절을 창건하고
운악사라고 부른 것이 봉선사의 전신이라고 전해진다.
봉선사로 이름을 바꾼 것은 조선 예종 때인 1469년으로 , 왕의 어머니인 정희대비가 죽은 남편 세조의 능을 운악산으로
이장하여 '광릉'이라고 하였고, 이 절을 세조의 명복을 비는 사찰로 삼아 ' 선와을 받든다는 뜻으로 봉선사라는
이름을 붙였다.
봉선사의 사찰음식
사찰음식을 총괄 담당하고 있는 포천 군내면 화원사 재화 주지스님과 지난 30년간 봉선사 채운관에서 사찰음식을 만들어 온
유화 관장에 의하면, 사찰음식은 예로부터 '의식동원'이라고 일종의 약과 같은 역할을 한다.
현재 봉선사 채운관에서는 3개월 과정으로 매주 금.토.일 오전 10시~12시 사이에 진행되는 사찰요리 프로그래므이 수강생을
선착순 20명 모집하고 있다.
회비는 50만원이며, 문의는 봉선사 사무실로 하면 된다.
이 밖에도 '템플스테이'와 '산사체험'등 다양한 체험행사를 진행 중이다.
특히 '행복 만원 템플스테이'라는 행사는 선착순 1만명을 대상으로 1박2일 과정과 당일과정으로 외국인도 참가할 수 있어
눈길을 끈다.
봉선사의 중요 문화재
봉선사의 역사는 고려시대부터 시작된다.
고려 광종 20년 법인국사가 창건한 운악사라는 절이 여러차례 난리를 겪으며 폐허가 된 것을1469년조선왕조 8대 임금 예종 원년) 정희왕후 윤씨 97대 세조의 왕비)가 세조의 영혼을 봉안코자 다시 일으켜 세운 뒤 봉선사라 개칭했다.
봉선사에 가면 가장 먼저 찾아볼 것이 대웅전 처마 밑에 걸린 현판이다.
대웅전이라 하지 않고 큰법당이라고 한글로 쓴 것이 이채롭다.
1970년 운허선사(춘원 이광수 팔촌 동생)가 대웅전을 세우면서 써서 달았다.
또 경내에 봉선사 대종 (보물 제 397호)이 있는데 임진왜란 이전에 만든 동종 중에서 몇 개 남지 않은 것으로
예정 원년 (1469)에 왕실의 명령에 따라 만들었다.
조선왕조 전기 동종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춘원 이광수 기념비
절 입구에 큰 비석 여러개가 눈길을 끈다. 그 중 하나가 춘원 이광수 기념비다.
일본이 제 2차 세계대전에 패하기 전 4년동안 남양주 사능 부근 작은집에서 산 적이 있었는데 그 때 겨울을 봉선사에서 지낸
인연이 있다.
비석에는 그가 남긴 글 중 일부를 빼곡히 새겨 놓았는데 글은 주요한이 짓고 글씨는 서예가 원곡 김기승이 써서 1975년
가을에 세웠다.
세조대왕과 정희왕후릉
광릉은 조선 제 7대왕 세조와 정희왕후 윤씨의 능이다. 사적 제 197호로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음 부평리에 있다.
좌측 능선의 봉분이 세조의 능이며, 오른쪽의 봉분이 정희왕후의 능이다.
광릉은 다른 왕릉에 비해 간소하게 조영되었다.
세조는 세종과 소헌왕후 사이에서 1417년(태종17) 9월29일 태어났다.
문종이 승하하고 나이어린 조카 단종이 왕위에 오르자 그는 측근인 권람, 함영회 등과 결탁하여 1453년(단종1년)10월
계유정난을 일으켜 조선 7대 임금으로 즉위하였다.
세조는 많은 치적을 세워 조선초기 왕권확립에 크게 공헌했으나 사육신으로 불리는 집현전 학사 출신 관료들이 단종 복위를
계획한 사건이 발각되자 모두 살해했을 뿐 아니라 선왕이자 조카인 단종을 유배지에서 죽이는 등 수많은 정적의 피를 보았다.
정희왕후는 파평윤씨로 영의정을 지낸 파평부원군 윤번의 딸로 태어나 슬하에 덕종.예종의 2남과 의숙공주를 두었다.
장남인 덕종이 요절하고 차남 예종이 14세로 즉위하자 조선 최초로 수렴첨정을 하였으며 예종이 재위 1년만에 승하하자
당일 덕종의 아들인 자율산군(성종)을 즉위케 했다.
성종 역시 13세의 나이에 즉위했기에 정희왕후가 7년간 섭정을 할 정도로 강한 여인이었다.
계유정난 때 세조를 독려했던 일화나 두 차례의 섭정 등에서 보듯이 성종 14년(1483) 66세로 승하할 때까지
정희왕후의 힘은 궁궐에 넘칠 정도였다.
조선왕릉의 규모
조선왕릉은 크게 3종류로 구분된다. 왕과왕비. 그리고 추존된 왕과 왕비의 무덤을 능이라 하고 왕세자와 왕세자비.
그리고 왕의 사친(종실로써 임금의 자리에 오른 임금의 생가 어버이)의 무덤을 원이라 하며, 나머지 왕족, 즉 왕의 정궁의 자식인 대군과 공주. 왕의 서자와 서녀인 군과 옹주. 왕의 첩인 후궁. 귀인의 무덤을 묘라 일컫는다.
세조는 "내가 죽으면 속히 썩어야 하니 석실과 석곽을 사용하지 말 것이며 병풍석을 쓰지 말라"는 유명을 내렸다고 한다.
광릉은 이 유명에 따라서 병풍석을 없액 석실은 회격으로 바꾸어 꾸몄으며, 병풍석에 새겼던 십이지신상은 난간 동자석주에
옮겨 새겼다.
이에 이후부터는 석실을 없애고 회격으로 꾸몄으며, 병풍석을 상살하지 않는 능이 많았다.
광릉이 최초인 것 세 가지가 있다.
첫째 . 최초의 동원이 강릉이다.
둘째. 세조의 유언으로 병풍석을 없애고 석실을 회격으로 하였다.
셌째. 조선최초의 수렴첨정을 하신 분이 정희왛후이다.
회격을 할 때 그 재료는 횟가루.마사토.가는모래로 하고 느릅나무 껍질을 끓은물로 섞었다고 하는데 그 강도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강해진다고 한다.
많은 치적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어린 조카의 왕좌를 뺏은 왕으로 더 많이 기억되는 세조대왕의 릉 삼계가 뚜렷하고 석마는
한 걸음 뒤에 위치해 있다.
병풍석이 없기에 12신은 동자석주에 새겨져 있다.
세조대왕은 망주석의 세호를 통해 세상의 소리를 듣고 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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