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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 산책로 ◑

최원도의 對 遁村告別

by sang-a 2007. 3. 2.
최원도의 對 遁村告別

慷慨傷時淚滿襟
-의분과 슬픔으로 눈물이 옷깃을 적시고-
流離孝懇達幽陰
-집을 떠나 헤매면서도 효성은 저승까지 다달았네-
漢山沼諦雲咽沮
-한산은 멀고 멀어 운현에 막혀 있고-
羅峴盤回草樹深
-나현은 회 돌아서 초수(草樹)가 깊구나-
天點後先雙馬鬱
-하늘이 선후로 두 무덤을 점하였으니-
維知君我兩人心
-누가  그대와나 두사람의 마음을 알수있으랴-
願吉世世長如此
-원컨데 세세로 길이 길이 이 같이 하여-
須使交情利斷金
-모름지기 교정으로 하여금 쇠라도 끊게 하세나-

.*註 沼[멀다]는 走변에 召.諦는 走변에 帝의 잘못이며 인咽은 말씀言변에 且의 잘못이며 維는 말씀言변의 잘못표기이다. 컴에 한자가 없어서 비슷한 글자로 채움 [작자崔元道소개와 詩作의배경] 영천인.고려말 學者. 字는 백상(伯常) 호는천곡(泉谷).공민왕代 문과 급제. 충목왕대 遁村 李集과 同傍進士[진사시라는 과거동기라는말]. 이어 공민왕대에 문과에 올라.판서를 지낸 고려 수절신이다. 조선 개국후 대사간의 벼슬을 내리고 태종이 불렀으나 고향 영천에 은거 不仕(불사.벼슬하지 아니함)하였다. 廣州의 李 集[충목왕대 문과.학자.이공수와안보=안향의 제자.고려 주자학의 巨儒. 고려주자학은 안향-이공수안보-이제현으로 이어진다= 의 문하로, 최원도와 동방진사이다. 공민왕조에 判전교시事(前 비서성卿.오늘날의 대통령비서실장)까지 이름. 호는 둔촌]과 막역한 친구 사이로 공민왕 시절 왕의 면전에서, 신돈의 전횡을 탄핵한 일로 신돈이 집권한 이후에 李 集은 화를 입게 되자 노구의 아버지[李 唐]를 업고 영천의 崔사간元道의 집으로 피난을 갔다. 이때 崔元道는 신돈등 관가의 감시를 피하며 공손하고 극진을 다해 친부처럼 효우하였으며, 李唐이 죽자 손수 李集과 같이 李集의 아버지를 장사 지내주고 숨겻다. 둘의 우정과 교우는 후에 사림의 의표가 되었으며. 둘이는 각각 사림의 천거로 서원에 배향되었다. 이 詩는 신돈이 죽고 나서 李 集이 귀양에 풀려 서울=개경으로 돌아가는 길에 李 集을 위해서 나현(지금 영천의 지명)에서 지은 전형적인 칠언 漢詩이다. 최원도는 유고집 천곡집을 남겨 현세에 전한다. [시의 내용] 朋友之交.離別의 서정,詩壇에는 잘 알려지지아니한 詩이다. 한산은 멀고 멀어 운현에 막혀 있고. 나현은 回 돌아서 草樹가 깊구나.... 참으로 名作이며.麗末 나현에 한아름의 함박꽃이 動하는 명작(鳴芍)이다. 우리 선조님의 서정성이 이토록 아름다우니 두보에 견줄만한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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