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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 산책로 ◑

고구려 자료. 장수왕릉의 비밀 1.

by sang-a 2007. 3. 8.


국내성에서 동쪽으로 향하다 보면 큰 산이 길을 막고 선다. 국내성 동쪽 배수진 역할을 담담했던 용산(龍山)이다. 용산 아래에 이르러 우측으로 차머리를 돌리자 차창 너머 멀리로 하얀색의 거대한 건축물이 눈에 들어왔다. ‘장수왕릉’이다. ‘장수왕릉’은 멀리서 보면 피라미드의 상단부가 약간 잘려나간 듯한 모양으로 큰 돌을 쌓아 올린 모습이다.
일반적으로 ‘장군총’이라고 알려진 이 무덤을 많은 학자들은 광개토태왕의 아들이자 고구려 20대왕인 장수왕의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다.
‘장군총’은 청나라 말기에 이 지역으로 이주해온 중국인들이 ‘중국 변경을 지키던 장군의 무덤’이라고 생각해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역사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던 이들이 고구려의 존재를 알 리가 만무했기 때문이다.
‘장군총’도 무덤 내 부장품이 대부분 도굴당해 그 주인을 알 수 없지만 많은 역사학자들은 무덤의 양식, 위치, 형태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장수왕의 무덤으로 결론짓고 있다.
몇몇 학자들은 장수왕이 평양 천도 이후 사망했다는 이유로 무덤의 주인이 장수왕이라는 사실에 부정적인 견해를 밝히기도 한다. 하지만 고구려의 장묘문화를 고려한다면 장수왕의 무덤이 국내성 인근에 위치하는 게 맞다. 사후 세계를 중시한 고구려인들은 결혼을 하면 묘지를 마련하고 왕이 즉위하면 바로 능을 쌓기 시작했다고 한다. 따라서 국내성에서 왕좌에 오른 장수왕의 릉이 국내성 인근에 위치하는 것이 당연하다.
높이가 12미터에 이르는 ‘장수왕릉’ 정상에 올라보니 ‘장수왕릉’은 남서쪽으로 광개토태왕비를 사이에 두고 광개토태왕릉과 마주 보는 위치에 자리 잡고 있었다. 장수왕은 부왕인 광개토태왕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광개토태왕비’를 세웠다. 그만큼 부왕의 업적을 높이 평가했고 존경했다는 증거다. 장수왕은 위대한 부왕 광개토태왕을 흠모하다 못해 죽어서도 부왕과 함께 영겁의 세월을 같이 하고자 이 자리에 자신의 영원한 안식처를 정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수왕릉’에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광개토태왕비’가 있는 작은 시골마을을 관통해 지나야 한다. 마을의 좁은 길을 지나자 마치 1천500년의 세월을 비켜온 것처럼 ‘장수왕릉’이 눈앞에 우뚝 서 다가왔다. 가까이서 본 ‘장수왕릉’의 거대한 크기와 완벽한 형태, 빼어난 조형미에 위압감마저 들었다.

‘장수왕릉’은 밑변의 길이가 32미터, 높이가 12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피라미드형 방단계단적석묘(方壇階段積石墓, 돌을 계단형식으로 네모지게 쌓아 올린 형태의 무덤)다. 무덤의 높이는 건물로 치면 5층 건물 높이와 맞먹다고 할 수 있다. 무덤의 크기만으로도 동아시아의 패자였던 고구려의 힘이 느껴졌다.

 

'장수왕릉‘은 길이가 5.7미터나 되는 엄청난 크기의 화강암, 1천100여개를 계단식으로 쌓아 올린 형태를 갖고 있다. 계단은 7단 구조로 돼 있고 위로 올라갈수록 계단이 너비와 높이가 점차 줄어든다. 계단이 줄어드는 것은 구조상의 안정을 위해서 채용한 형식이겠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뛰어난 조형미를 갖고 있다. ’장수왕릉‘이 가진 안정감과 빼어난 조형미에서 고구려인들의 건축 기술과 미의식을 잠시나마 엿볼 수 있었다. 또, 1천100여개의 돌이 그려내는 패턴은 그 무늬만으로도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광개토태왕릉’의 기단부에 기대어져 있던 거대한 자연석들을 ‘장수왕릉’ 기반부에서도 볼 수 있었다. 장수왕릉의 것은 크기가 3~5미터, 무게가 30여톤이나 되는 거대석들로 무덤의 각 면에 3개씩 12개가 있었지만 현재는 11개만 남아있다.
‘장수왕릉’을 이루는 모든 돌들이 정교하게 깎여 있는 것과 비교해 전혀 가공되지 않은 자연석들이 놓여 있는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처음에는 무덤이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버팀돌이라는 설이 있었으나 최근에 많은 학자들은 고구려의 ‘거석숭배문화’의 반영이라는 설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가공되지 않은 자연석에는 신성함이 담겨 있고, 그 신성함을 이용해 왕권의 신성한 권위를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다는 것. ‘광개토태왕비’가 가공되지 않은 자연석으로 만들어진 것도 같은 이유라고 한다.

 

 *출처: 이옥현기자의 고구려 문화유적답사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