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功)을 자랑하지 않는 것이 더 어렵다
임진년 8월에 이조참의 이정암이 연안을 가게 되었다. 이정암이 전에 연안부사를 지낸 일이 있으므로
그곳의 호걸들이 무리 백여 명을 모아서 그를 영접하였다. 이정암이 성에 들어가서 5백여 명을
모집하여 각기 능력을 따라 부서를 나누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해주를 함락시킨 왜장(倭將) 장정이
군사 3천 명을 몰아 쳐들어오니 사람들이 놀라 성 밖으로 나가 진을 치자고 하였다.
이정암이 말하기를 “나는 이미 군민과 생사를 같이하기로 약속하였다. 백성을 어려움 속에 놓아두고
나만 살아 돌아갈 수는 없다. 겁이 나는 사람은 마음대로 나가거라. 붙들지 않겠다.”고 하니 모든
군사가 목숨을 걸고 성을 지키겠다고 다짐하였다.
적이 달려들어 세 겹으로 포위하고 민가를 헐어서 참호를 메우고 북을 치며 개미처럼 성에
달라 붙었다. 이정암은 쌓아 놓은 마른 풀 위에 앉아서 그 아들 준에게 말하기를 “성이 함락되면
스스로 불을 질러 타 죽을 것이다.”하였다. 듣는 자가 감동하여 울며 일제히 죽기로 싸웠다.
이와 같이 하기를 4일 만에,
적병 중에 반 이상이 죽거나 부상하여, 밤에 송장을 모아 불사르고, 다음 날 아침에 포위를
풀고 물러갔다.
조정에서 이정암이 포위를 당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모든 사람들이 걱정하고 위태롭게 여겼는데
승전한 보고가 이르렀다. 그러나 글에는 다만 이렇게 적혀 있을 뿐이었다.
“적이 아무 날 성을 포위하였다가 아무 날 그 포위를 풀고 나갔습니다.”
한 마디도 장황한 말이 없었다.
이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이르기를 “적을 패배시키는 것도 어렵지만 공(功)을 자랑하지 않는 것은
더욱 어렵다.”고 하였다.
-<해동명신록海東名臣錄>에서-
조그만 일을 가지고도 자화자찬에 공치사를 하는 우리네와 비교 할 때, 참으로 진실하고 용기 있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는 전형(典型)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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