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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 & 예술 ◑

서편제 2

by sang-a 2016. 1. 3.
 


이리 저리 떠돌다 결국, 다른 약장수에게 빈대 붙어서 소리푼을 또 팔기 시작하는데,
저기 저 동호는 또 북채를 들고 눈치나 살살 보면서 어영부영 북을 치기 시작한다
 
저래 가지고 북 치고 밥 벌어 먹고 살겠나 ?
하기야 주린복창 매일같이 쓸어 안으며 소리나 냅다 질러대고 있으니, 뭐 북칠 맛이 나겠나 ?
그래도 아버지한테 깨지지 않으려면 열심히 해야제
하여간 저 동호는 아버지 한테 불만이 매우 많은것 같지만, 그렇다고 지가 뭐 달리 뾰죽한 수도
없는 형편이니, 어쩔거나 ? 기왕 하는것 제대로 해야제
 
아무리 천하의 고집쟁이 소리꾼 유봉이라 할지라도, 목구녁이 포도청인께로 할 수 없이
또 약장사를 따라 다니며 송화와 같이 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동호는 아직도 저렇게 시큰둥하게 북을 치고 있으니 천상 소리꾼으로는 비러먹게
생긴 팔자인것 같고만...
 
그런디 이것은 또 뭣시다냐 ?
갑자기 " 눈 내리는 청춘역 " 이라는 유랑극단 광대들이 북, 아고디언, 나팔등을 냅다 불어대며
거리를 휩쓸고 지나자, 구경꾼들도 소리에는 이제 더 이상 흥미가 없다는듯, 그 유랑극단을
따라가고 있었고, 약장사 주변에는 갑자기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그야말로 썰렁 그 자체였다
약장수와 유봉도 넋이 반쯤 나간체 김이 파악 ~ 샌 표정들을 하고 있었다
이러니, 앞으로 약장수를 따라 다니며 밥 벌어 먹고  산다는것이  더 힘들어 지는 시대가 온 것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약장수를 따라 다니는것도 쉽지 않아 지자 유봉은 송화와 동호를 데리고
어느 깊숙한 폐가로 들어와 미친듯이 소리 연습에 온 힘을 쏟아 붓고 있었다
아니, 이미 유봉은 소리에 완전히 미쳐 있는 미치광이 상태였던 것이다  
이 으시시한 폐가에서 송화가 소리를 냅다 지른다
 
" 아 ~ 으으으 ~ 우우우 ~ 으으으우 ~ 으이  ~ 으이 ~ "
송화가 이렇게 있는 힘을 다해 소리를 했지만, 유봉은 자기 성에 차지 않았는지,
북채를 딱 딱 두두리며 한 마디 한다
 
" 이 대목은 풍성을 쓰지 말고 머리하고 코를 울려서 가성을 쓰라고 그랬지...어이흐으 ~ "
이렇게 애써 손수 지도를 해 주고, 다시 해 보라는 주문을 하니, 송화가 또 소리를 냅다 지르기
시작한다
 
" 으으흐으 ~ 으으흐으 ~ 흐으우우 ~ 으흐 ~ 으흐우 ~ 아이호 ~ 아이흐우 ~ 우우 ~ "
" 옳지 잘 했어 ! 옛날에 송흥륭이란 명창은, 이 귀곡성을 어트게 잘 했던지 밤 중에 이 소리를 내면
갑자기 바람이 불고 촟불이 꺼졌다는 게여 "
 
이때 폐가 밖으로는 귀곡성이 울려 나가듯 으시시하게 소리가 퍼져 나간다
으으흐으 ~ 으으흐으 ~ 흐으우우 ~ 으흐 ~ 으흐우 ~ 아이호 ~ 아이흐우 ~ 우우 ~
 
으...듣기만 해도 섬짓 하고만 !
 
이때 유봉은 송화의 소리가 못 마땅하다는듯 또 한 마디 한다
 
" 상승을 올리적에는 창이라도 찌들듯이 무섭게 내질러야지
그렇게 힘없이 올리면 그거시 소리냐 ? 넋두리 흥 타령이제 !
아...거기다가 몸뚱이는 왜이리 비틀어 ! "
 
이때 밖에서 듣고 있던 동호도 못 마땅 하다는듯, 매우 불만 스런소리를 불쑥 내 뱉는다
 
" 에헤 ~ 기운이 없으니 비틀기라도 해서 쥐어 짜야지 "
" 뭐여 ! "
" 허구한날 죽으로 때우고 사는데 뭔 힘이 있다고 소리가 나오것소 ! "
" 네 놈이 뭘 안 다고 떠들어 ! 주둥이 닦치고 있어 이놈아 ! "
 
동호의 불만섞인 목소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소리 연습에 몰두 하기 시작한다
 
" 자 ! 나는 다른 귀신이 아니라서 못하지 ! "
나즈막하게 따라서 하라는 유봉의 소리에 송화가 또 냅다 소리를 질러 대는데
 
" 나는 ~ 나아~아~는 귀이시인이~ 아니라아 ~ 못 하지 이이이 ~ "
이때 밖에서 불만이 싸일대로 싸인 동호가 한 마디 거든다
 
" 누님 ! 이젠 소리로만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여 ! 
괜히 쓸데 없는짓 하다 골병들지 말고 관두란 말이여 ! 그까짓 소리하면 쌀이 나와 밥이 나와 ! "
 
말이야 바른 말이지, 그까짓 아무짝에도 쓰잘데 없는 소리 하다 골병드는것 보다
얼굴도 반반 하것다, 다른 길을 찾아도 얼마든지 좋은길이 있을텐데, 뭣 담시
주린복창 쓸어 앉으며 저 짓 거리를 하는지 동호는 그저 그런 아버지가 영 못 마땅 하기만
할 뿐인 것이다   
 
이때 유봉이 뿔따구가 머리끝까지 올라 섬짓한 목소리로 호통을 친다
" 뭐여 ! 야 ! 이놈아 !  쌀 나오고 밥 나야만 소리 하냐 이놈아 !
지 소리에 귀신이 들어 올라면 쌀 보다도 황금보다도 더 좋은거시 소리여 이눔아 ! "
 
그러자 불만이 싸일대로 싸인 동호도 또 뭐라 뭐라 투덜 거리기 시작한다
이때 유봉도 발끈하여, 숨을 할딱 거리며 눈을 허옇게 부라리고 동호를 쫓아가 아작을 내기
시작을 하는데...
 
" 이 놈의 자슥이 대가리 컷다고 어디다 함부로 주둥아리 나불대 ! "
" 내가 뭐 틀린 말했어 ! "
" 빠악 ~ "
이미 독이 오를대로 오른 동호도 대그빡 터지게 대거리 한다
 
" 왜 때려 ! 니미럴 ! "
" 아니 ! 이 자슥이 어디다 에비한테 대들어 이눔의 자슥이 ! 
천하에 배은망덕한 자슥이... 야이 개눔의 자슥아 ! 이노무 새키 !
 
동호가 개놈의 자슥이라면 지는 개놈의 아버지 아닌가베 ?
아이고오...저런 쌩 무식한노매 아배 봤나 ?
 
" 뻑 ~ 찌익 ~ 빠악 ~ "
아버지한테 발길질로 당하던 동호한테 저럴때는 박수라도 쳐 주어야제
 
" 이따위 광대 노릇 안 하면 그만 아녀 ! 지미럴 ! "
그러고 동호는 그 곳을 도망쳐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잘 해 부렸다 동호 !
저렇게 소린지, 뭐 시껭인지한테 완존히 미쳐 뿌린 아비 한테는 그저 36계 출행랑을 쳐서 
어디가서 독립하는 것이 아들 다운 일이다. 빈 몸으로 도망가서 어디서 무슨 고생을 하고
있을지는 몰라도 그 것이 영화를 보는 관객의 입장에서도 보기 통쾌 하다
 
내 그대 동호 한테 박수를 을매나 쳤는지 모르제...
짝짝짝..
잘했다. 잘했쓰. 아주 자알 했쓰...
짝 짝 짝...
 
그로부터 세월이 한 참 흐른후, 동호는 누이인 송화를 찾기 위해 다시 보성땅에 나타난다
그리고 이 곳 저 곳을 수소문 한 끝에, 송화가 있었다는 소릿재 주막에서 송화의 행방을 묻는다
 
" 실례 합니다 ! 이 집에 송화라는 장님 소리꾼이 있었다는데..."
" 있었죠. 한 삼 년까지는..."
" 지금은 어디 있는지 모르슈 ! "
" 몰라요 "
" 이집에 누구 아는 사람 없을까요 "
" 없어요. 내가 제일 고참인데 뭐 "
 
술집 작부는 이렇게 시큰둥하게 말을 해 놓고는 가마히 생각을 하니 기억나는 것이 있었는지
다시 송화가 있었다는 술집을 가르켜 준다  
 
그 작부가 가르켜준 주점에 가서 또 다시 송화의 행방을 물으니
 
" 예에 ~ 우리집에 몇달 있었죠 "
" 지금 어디 있을까요 "
" 글세요오 정처없는 떠돌이라 "
" 같이 사는 남자도 없었습니까 "
" 아이구우...누가 장님 데리고 살려고 하겠어요.
소리도 잘 하고 얼굴 밴밴 하니까 놀이개 삼아서 놀다가 떨어져 나가고 했지요 "
 
결국 누이인 송화의 행방을 찾는데 실패한 동호는 보성 이 곳 저 곳을 돌아 다니다
옛날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였던 그림쟁이 아저씨를 만나게 되고, 그 그림 쟁이 아저씨에게서
아버지와 송화의 소식을 듣게 된다
 
아버지 유봉과 송화는 자신이 아버지에게서 도망간 뒤로, 이곳 저곳 비어 있는 폐가를 골라 다니며
미친듯이 소리 연습을 했다는 것이다
 
동호에게는 북을 가르치고 송화에게는 소리를 가르치던 아버지 유봉 !  
동호가 생활고와 유봉 때문에 엄마가 죽었다는 괴로움을 견디지 못해 아버지를 곁을 도망치자,
유봉은 송화 마져도 자신곁을 떠날까 염려 했었고, 그리고 또 송화의 소리에 한을 심어주기 위해
송화의 눈을 멀게한 것이다
 
유봉이 !
차암 독한 사람일세 !
아무리 그래도 글치, 이 사람아 !
사람의 눈을 멀게 하면 무슨 죄가 성립되는지 알기나 하나 이 사람아 !
 
아무리 소리도 좋지만 그거이 뭐고 ?
 
결국, 살을 에이는듯한 엄동 설한에, 어느 비어 있는 귀곡산장 같은 폐가로 송화와 함께 들어오게 되고
앞을 보지 못하게 된 송화는 걱정이 된듯이, 이제는 어떻게 먹고 사시냐 하면서 조심스럽게 물어온다
 
그 물음에 유봉도 걱정은 되었겠지만 그래도 넉살 좋게
" 요 아랫동네에 그래도 한 이십여집이 살고 있는데 설마 산 입에 거미줄이라도 치것냐 ? "
하면서 애매 모호한 대답만 할 뿐이였다
 
그리고는 송화가 배를 골고 있는것이 안 스러워 동네에 내려가 닭을 한 마리 서리를 해 가지고 왔다
그리고는 닭국을 끓여 먹이면서 또 자신이 원하는 소리가 나오지 않자 맥없이 한 마디 한다
 
" 이 석변 소리는 말이다. 사람의 가슴을 칼로 저미는 것처럼 한이 사무쳐야 되는디
니 소리는 이쁘기만 하지 한이 없어 ! 사람의 한 이라는 것은 한 평생 살아 가면서 천천히 쌓여서
응어리 지는 것이다. 살어가는 일이 한을 쌓는 일이고, 한을 쌓는 일이 살아 가는일이 된단 말이여 !
너는 조실 부모 한 뒤에 눈깔까지 멀었으니, 한이 쌓이기로는 남보다 열 배나 스무배 더 할틴디,
워째 그런 소리가 안 나오냐 ? "
 
아이구우....저 미친 영감 ! 죽어서도 저 욕심 가지고 갈거여 !
기왕 이렇게 된것, 자신이 원했던 것처럼 한을 뛰어 넘는 소리가 나오게 만들어 주던지,
그렇지 못하면, 눈을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던지, 둘 중의 하나는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저 영감은 죽어서도 펄 펄 끓는 불가마속에 들어가 억겁을 보내야 할테니,
이제 안 달이 난 것이지 뭐
 
결국 송화를 찾아 헤매던 동호는 어느 이름 없는 주막에서 송화를 만나게 된다
그러고는 송화에게 판소리를 청하고 자신은 북 단장을 치면서 밤 새도록 조우를 하는데
송화는 북소리의 느낌으로 단 방에 동생 동호임을 알지만, 그냥 모르는체 하면서 소리를 할 뿐이다
 
으으으흐으 ~ 으으 ~ 으흐흐 흐으으 ~ 아이 아 아아 ~ 흐으 ~ 아아 으이 ~
쿵따닥 쿵딱 ! 
으허어 ~
 
동호 ! 오랫만에 북 진짜 찐득하게 치더만..
진작에 그럴것이지 자슥이...
어찌 되었든 두 자매는 서로를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저 스쳐 지나가는 타인들처럼 만나,
한 바탕 소리판을 벌였던 것이다
 
아버지가 늘 그렇게 미친듯이 갈망하고 원했던 것 처럼
한에 머무는 소리가 아니라, 진정코 한을 뛰어 넘는 소리를 했던 것일까 ?  

출처  블로그 비단장수 왕서방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