思吳江歌(사오강가) /樂府體
秋風起兮佳景時 추풍기혜가경시
吳江水兮鱸魚肥 오강수혜노어비
三千里兮家未歸 삼천리혜가미귀
恨難得兮仰天悲 한난득혜앙천비
가을바람 불어 경치 아름다운 때
오강의 물에는 농어가 살찐다네
삼천리 밖 집으로 돌아갈 수 없으니
한탄도 어려워라 하늘 쳐다보며 슬퍼하노라.
장한(張翰)
[사오강가(思吳江歌)](樂府)
동진(東晉) 때의 장한(張翰)이 대사마동조연(大司馬東曹掾)의 직을 맡아
낙양(洛陽)에 있을 때 가을 바람이 불자
고향인 강동(江東) 오강[吳江, 일명 오송강(吳淞江),
약칭 송강(鬆江)]의 순채국과 농어회를 떠올리며 지은 악부시다.
그는
인간의 삶 가운데 가장 귀한 것은 자신의 뜻과 마음에 따르는 것인데
"어찌하여 관직에 얽매여 수천 리 밖에서 명예와 관직을 구하겠는가"
人生貴得適意爾
(인생귀득적의이)
何能羈宦數千里以要名爵
(하능기환수천리이요명작) 이란 말을 남기고 사직하고 낙향했다.
임금도 그가 향수(鄕愁)에 젖어 사의를 밝히니 순순히 허락했다 한다.
공직에 있으면서 윗사람과 뜻이 맞지 않거나 뭔가 마뜩찮은 구석이 있어
사직을 한다고 하면 좋게 봐줄리 없다.
어릴 적 고향에서 먹던 음식 맛을 잊을 수 없어 그만둔다고 하면
속마음이야 어찌됐든 모양새가 그럴 듯해 보인다. 제법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그래서인지
훗날 사람들은 공직에서 물러나고 싶어하는 마음을 순노지사(蓴鱸之思)
또는 순갱노회(蓴羹鱸膾)라 표현했다.
[세설신어(世說新語)]
[식감(識鑒)][第七]과
[진서(晉書)][문원전(文苑)]전
"장한(張翰)"조에 기록이 보인다.
장한이 그의 시에서 말한 오강노어(吳江鱸魚)란 실상 꺾정이를 말한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는 성질이 평이하고 맛이 달지만 약간의 독이 있다.
오장을 보하고 위를 편하게 하며 근육과 뼈를 이롭게 한다.
회로 먹으면 더욱 맛이 있고 많이 먹어도 해롭지 않다고 설명하고 있다.
일찍이 북송(北宋)의 대문호 소동파(蘇東坡)는
"계응(季鷹: 張翰의 字)은 진실로 수중선(水中仙: 농어)을 얻었으니
스스로 현명해졌네"
季鷹眞得水中仙
直爲鱸魚也自賢 라고 읊었다.
역시 북송
[용도각직학사승상](龍圖閣直學士丞相) 진소자(陳堯佐)는 그의 시에서
"조각배 매어둘 언덕으로 차마 가지 못하니
가을 바람 지는 해 농어의 고향일세"
扁舟系岸不忍去
秋風斜日鱸魚鄕 이라 하여 오강(吳江)을 농어(鱸魚)의 고향으로 찬양했다.
또 송(宋) 희령(熙寧) 연간 오강(吳江)의 지현(知縣)이던 임조(林肇)는
그곳에 "농어의 고향"이라는 뜻으로 농어정(鱸魚亭)을 짓기도 했다.
송나라의 서법가 미불(米芾)은 그의 시 [오강수홍정작(吳江垂虹亭作)]에서
玉破鱸魚霜破柑
垂虹秋色滿東南 이라 읊었다.
신기질(辛棄疾)은 그의 사(詞) [수룡음(水龍吟)]에서
休說鱸魚堪膾
농어로 회뜨기 좋다고 말하지 말라 고 읊고 있다.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도 43세 때인 1922년 지은
[추야술회(秋夜述懷)]에서
莫說江東鱸魚膾美
如今無地繫漁舟
고국의 농어 회(膾) 맛 좋다 이르지 마라
지금은 고깃배 맬 땅도 없는 것을 …
이라고 망국의 회한을 토로한 바 있다.
※ 蒓 = 蓴(순채)